책소개
노벨문학상 수상 및 퓰리처상 4회 수상 등 미국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 이민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파멸해가는 아버지와 마약중독자 어머니, 알콜과 여자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형, 결핵을 앓는 시인 동생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한동안 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책이 있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가 그것이다. 불편함이나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오만가지 감정이 마음속에서 울렁거렸다. 책 속 인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잔함 때문이었을까?
어렸을 땐 세상이 선과 악으로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신념이 있었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어른들이 어리석어 보였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은 선과 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과 사람들의 입장 차이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극명한 입장차로 관계가 비틀어진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쉽지 않은 인간 사회에서 특히, 혈연으로 엮인 가족 관계는 가장 소중한데도, 한번 꼬이면 풀기가 힘든 관계이기도 하다.
1912년 8월의 어느 날 아침, 타이런 가족은 식사를 끝내고 제임스와 메리는 대화를 나누는데 두 사람은 건강이 안 좋은 에드먼드를 걱정한다. 신경 과민을 겪고 있는 메리는 에드먼드의 건강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제임스는 아내를 위로한다. 한편, 제임스는 맏아들 제이미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벌써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변변한 직업도 없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아들이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제이미는 열 살이나 어린 에드먼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어 아버지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제이미는 제이미대로 인색한 아버지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부자 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제:빛과 사랑의 여로에 선 유진 오닐
책을 읽어보기 전에 작품 해설을 먼저 본게 실수였다.
“안개 인간들을 위한 진혼곡”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지고 내용은 유진 오닐 작가를
완전히 검은 옷을 입히고 검은 것으로 덮어 씌워서 아예 그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유진 오닐의 부모와 그의 형까지도 그렇게 도색을 해놓고 책을 읽게 하니
공연히 반감이 생겼다.
검은 색이 아니라 그냥 우리처럼 카멜레온 색을 했지만
잠시 빛으로 인해 재색이 된 것 뿐인 것 같았다.
대체 어디를 보고 그랬던 것일까?
책의 맨 앞에 유진 오닐이 아내에게 보내는 서문이 있었다.
연극 대본을 읽는 것은 생생하고 활력적이다. 대사를 통해 각 인물이 되어 봄으로써 감정적으로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1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족은 소름 끼치게 닮아 있다. 서로 고통을 주고받지만 떨쳐 낼 수 없는 끈끈한 그 무엇 때문에 오늘도 견뎌야 하는 존재들.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가끔 지긋이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낯선 얼굴이기도 하다. 그들의 속내라도 듣게 되는 날엔 내가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나? 자문하게 된다. 매일 한 공간에서 만나 일상을 공유하지만 실상 가족이라 불리는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는 서로 책임져야 할 공동의 일들과 마땅히 감내해야 할 의무가 무겁게 드리워져 있기에 결코 스윗 할 수 없는 건 아닐는지. 어쨌든 고난이 닥쳤을 때 함께 헤쳐 나가야 하고 가족 구성원이 곤란에 빠졌을 때 일차적으로 도와야 하는 게 가족이니까 무겁고도 고마운 존재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많은 사건이나 플롯들로 구성되지 않은 희곡이다.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내재적 구조를 가지는 희곡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족의 불행이 누구 때문인가를 물으며 내용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다 읽고 나면 이들의 불행과 고통이 개개인의 잘못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가운데서 무대가 맡는 역할이 무엇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무대가 변화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티론 가족의 여름별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태양을 가져왔다. 그러나 태양이 나타내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뿐만이 아니다. 태양은 빛과 어둠을 조절하는 것을 통해 가족의 분위기와 심리를 반영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 공연관람을 위해 명동예술극장으로 향하였다.
공연의 제목은 ‘밤으로의 긴 여로’였고, 작품은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 유진오닐의 작품이었고, 일본인 연출가 쿠리야마 타미야가 국립극단원들과 함께 연출하여 올린 작품이었다. 최근 외국인 연출가를 초청해 하는 공연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제목만큼이나 런 타임이 길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3시간 30분의 공연이었다.
티켓팅을 마친 후 일찍이 입장해 자리에 앉은 나는 우선 무대에 시선을 뺏길 수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여 감상문에 올리고 싶을 만큼 무대가 정갈하며 깔끔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장면의 전환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장소에서 진행 되는데 그 만큼 무대를 잘 구성하였다고 본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단순히 미국인 가정의 비극이 아니라 현실에서 누구나 내면에 갖고 있는듯한 환상에 빠진 인간의 비극을 표현함으로써 인생의 낙조를 서글퍼한다기 보다는 눈물로써 인생을 사랑하는 애정과 그리움을 절실히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문제로써 환상에 빠진 인간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과거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닐은 우리는 꿈으로 만들어진 존재,우리의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라고 셰익스피어를 암송한다.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직 남아있는 듯 하다.
여기에 막내아들은 우리는 인분으로 만들어진 존재,실컷 마시고 다 잊읍시다 라고 비꼬아 대꾸한다.
삶 자체에 대한 철저한 저주다.하나같이 상처 입은 식구들은 서로 바라보는 것조차 고통이었다.잊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들은 늘 술에 절어 산다.어머니는 매일 모르핀 주사를 맞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오후가 되면서 약기운에 취해 현실을 벗어나고 자정쯤에는 남편과 처음 만났던 수십년 전으로 돌아간다.그리고 다락에서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가져와 남편에게 준다.할 수만 있다면,결혼전으로 돌아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뜻이다.그녀의 어릴적 꿈은 수녀나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현실도피와 환상에 빠져 사는 모습을 통해서 결국은 인생을 사랑하는 애정과 그리움을 절실히 표현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