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건축을 전공하고 나서 수없이 들어온 르꼬르비제라는 거장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혼란스러움이 조금은 남는 것 같다. 책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지어진 책이라는 사실을 잊고 책에 너무 빠져서 읽은 탓도 있고 책을 완전히 소화하기에는 아직 내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제를 위해 주어진 세 가지의 책 중에 르꼬르비제의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을 읽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과제가 주어진 날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바로 간 탓에 `정신착란증의 뉴욕과`, `라스베가스의 교훈`을 빌릴 수 있었고 기숙사에 들어와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고민에 두 권을 대충 읽어보았지만 내용이 눈에서만 읽힐 뿐 도무지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아 읽다 말고, 읽다 말고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집이 이사를 한다는 소식에 부모님을 도우러 부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시간이 남아서 서면에 있는 서점에 들렀는데 때마침 `새로운 건축을 위하여` 라는 책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어떤 책일까 하는 호기심에 조금 읽는 다는 것이 책 내용에 빠져서 기차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도 잊고 계속 읽다가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친구랑 놀다가 혹은 술을 마시다 기차를 놓친 적은 있어도 책을 잘 읽지 않는 내가 서점에서 책을 보다 기차를 놓쳤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평일이라 별 어려움 없이 다음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짜증이 많이 났을 터이지만 그날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기차야 수도 없이 다니지만 난 값진 책 한 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생각은 기차 안에서 어느 정도 책을 읽은 후에야 한 생각이지만 말이다. 친절하게 책의 전반부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책이 어떤 내용들을 기술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기가 그나마 수월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