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간과되기 쉬운 사회 현안들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포함하여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현대판 마이더스>,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 등 15편의 글을 만나볼 수 있다.
게으름이 찬양할 거리가 있나 처음에는 매우 제목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읽다 보면 저자가 말하는 게으름은 사회적인 딱지 같은 것이지 노동자나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필수적인 ‘여가’나 휴식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걸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저자는 노동은 여가가 있어서 빛이 난다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인 만큼 휴식이 주어져야만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또한 사회가 과도하게 노동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풍토가 매우 많다. 어느 기업을 가도 법정 시간 내로 일을 끝내는 것이 베스트인 것이 아니라 알아서 남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평가가 좋은 경우가 매우 많다.
'하루 4시간 노동'을 이야기한 책으로 잘 알려진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In Praise of Idleness> 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 책에서 기술이 발전한 사회에서는 하 루 4시간만 노동해도 모든 사람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으며 나머지 시간을 여가나 게으름에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1935년 출간된 버트런드 러셀의 에세이로 그의 정 치, 사회, 경제적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러셀은 우선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오히 려 과도한 노동은 인류에 해가 될 수 있으며 여가와 휴식의 중요하다는 점 을 강조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답게 글이 소름끼치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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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주변의 문제들이 이 책에 녹아있으며,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어떻게?에 이르기까지 노동, 교육, 건축, 정치, 환경, 과학기술 등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하여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하나하나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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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지식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가슴에 팍팍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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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일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법이 없다.
진지한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습관에 대해 비판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훌륭한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기 때문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만이 바람직하다는 관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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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기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전문적 기능으로 여겨지게 됐다.
강의에 앞서 교수님이 게으름이 과연 나쁜 것 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난 망설임없이 당연한거 아닌가. 사람은 부지런해야지 라고 생각했고 교수님께선 도둑이 부지런하다면? 살인자가 부지런하다면? 이라는 농담 아닌 반론을 하셨다. 이것이 나에게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 이라는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기엔 충분했다. 책 앞장의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고 하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이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정하게 여가를 분배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노동시스템을 적절히 조직해 모든 사람이 4시간 짧은 노동시간을 가져도 사회가 굴러갈 수 있다고 말하며 전시때의 상황을 말하며 뒷받침한다.
독서클럽을 신청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띠었던 책이 바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다. 대학교에 막 입학하여 들었던 글과 소통 수업에서 한 번 언급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정 도서 3권 중 이 책을 선택 하였고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게다가 평소 ‘빨리’보다는 ‘천천히’를 더 좋아하는 나로선 책 제목조차 흥미롭고 마음에 와 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게으름’하면 ‘느림’을 먼저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 예상 줄거리도 이러한 내용이었다. 전에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라든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이 두 책과 비슷한 주제이겠거늘-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문적이고 체계적 이여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말았다. 또한 기존 책과는 달리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그의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해석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고, 중간 중간 언급된 예화도 흥미로웠다.
나는 평소 ‘게으름’하면 ‘느림’을 먼저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 예상 줄거리도 이러한 내용이었다. 전에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라든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게으름에 대한 찬양’도 이 두 책과 비슷한 주제이겠거늘-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문적이고 체계적 이여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말았다. 또한 기존 책과는 달리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그의 해결책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해석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고, 중간 중간 언급된 예화도 흥미로웠다. 그 덕분에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룬 ‘게으름’ 이란 바로 ‘여가 시간’이였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8시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4시간으로 줄여 할 수 있게 되었다면 4시간의 시간을 번 것이고, 이 시간에 또 일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게 바로 ‘게으름’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교 1년동안 자기생각을 배재해야만 했던 실험 레포트를 쓰던 나에게 독서감상문이라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주먹구구식으로 읽으면서 어렵다고 느꼈는데, 두 번째 시도 때 메모를 하고, 음성녹음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니 길이 보였다. 솔직히 이 책도 사람이 게을러서 만든 발명품을 열거해 놓은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칼럼 같은 글에 남태평양의 군도같이 다양한 주제들이 다양한 색을 띄고 있는 책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책의 지은이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분은 1970년대에 생을 마감한 영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였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하던 소년. 이러한 그의 특성이 게으름을 찬양하는 게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지않았을까.
이 글쓴이가 말하는 게으름이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여가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많은 노동으로 괴롭기보다는 4시간동안 열심히 일해 기본적인 걸 갖추고 그 다음 여가시간을 풍족하게 보내자는 이야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