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부터 용산참사, 미디어법 개정, 세종시 원안 수정 문제까지. 한국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통합된 의견 수렴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이자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생각의 좌표’는 홍세화 씨가 쓴 사회비평서이다. 저자는 프랑스 유학 시절 겪 은 경험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또한 역사의식 없이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현 세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나 최근 들어 문제시되고 있는 비정규 직 노동자 및 청년 실업문제 해결방안이나 교육제도 개혁 방안 등은 많은 고 민거리를 안겨준다. 물론 이런 주제들이 하루아침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 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각의 좌표라는 책은 ‘나의 생각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내 생각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한다. ‘시크하다’와 ‘생각의 좌표’중 읽을 책을 고를 때에도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의 주인이 바뀌어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먼저 나의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책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나라는 등급 사회이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토익점수와 그만큼의 스펙, 학점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소양이나 가치관보다는 근거가 있는 것,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 그 사람의 등급을 매겨주는 것이다.
나는 가끔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명쾌하게 뭐라고는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안목과 기술 능력을 보면 그 생각에 공감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 즉 나의 생각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우리는 각자 생각을 만들며 살아왔고 ‘나’를 완성해 가고 있으며,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생각하고 있는 바에 자유롭지 못하며, 자유롭지 못한 생각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자기성찰의 출발점이자, 내가 가진 ‘내 것이 아닌’ 생각들을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견문, 성찰의 네 가지 경로를 통한 진정으로 얻기의 출발점이 된다. 진정으로 얻기란 학(學), 배우는 것이 아닌 습(習), 익히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이루는 초석인 교육은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의 평가로 이루어져 있고 그 평가로 줄을 세워 차별한다.
저자인 홍세화는 생각의 좌표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은 ‘나의 생각은 어디서 왔나?’에서부터 시작한다. 생각의 주인은 본인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자가 택시기사들에게 한겨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을 때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대답하면서도 막상 그 신문을 읽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 생각의 주인은 택시기사인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생각의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박탈당해왔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 쯤 겪어봤을 “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저자소개
1947년생으로, 1972년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으나, 1977년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한다. 1977년 부터 79년까지 '민주투위' '남민전'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3월 무역회사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 (1979년 대한민국 유신말기 최대의 공안사건으로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되어 있다)'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한다. <한겨레> 기획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인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을 출판했다.
●요약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을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고집할텐데 대체 바뀔 가능성이 없는 나의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내가 갖고 있는 의식이어서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가지만 나에게 그 의식을 갖도록 한 주체는 내가 아니라 지배세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을 자동차와 견준다면 우리 삶은 자동차와 달리 후진기능도 없고 정지 기능도 없다. 나에게 허용된 것이 핸들뿐이라는 얘기인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고집한다는 것은 핸들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그 핸들마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고정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고정된 것이라면?’ 이 부분은 거의 첫 부분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내 스스로가 생각하고 자유의지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의 물꼬가 트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왜? 라고 묻지 않는 걸까?, 현재 우리나라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내 생각을 써보았다.
첫 번째로는 나는 왜? 라고 묻지 않는 걸까? 이다. 나는 어렸을 때 호기심이 많고 만들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많은 수가 아이돌, CEO, 또는 건물주라고 대답한다. 소방관이나 시인, 우주비행사, 간혹 대통령을 꿈꿨던 나의 어릴 적과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조차 돈과 기득권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홍세화 작가의 ‘생각의 좌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유하는 인간으로 사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읽는 내내 대다수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경험했을 것들과 거의 비슷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반성하게 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피해 의식을 꼬집어 주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책의 서막은 인문학의 기피 현상에 대하여 비판하며 시작한다. 사람과 짐승과의 다른 가장 큰 점이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렇게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사람은 인간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과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을 뜨는 만큼 자아의 세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모름지기 정답이 있는 학문뿐만 아니라 ‘인문과학’을 배워야 한다.
이책의 큰 차례는 1.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2. 회색의 물신 사회 3. 긴장의 항체
로 짜여있다. 책의 초반부엔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빼곡히 실려 있다. 여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색깔이 분명하고, 나 역시 거기에 무한 공감했다.
21C 대한민국의 문제점과 고칠 점,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점도 모두 다 맞다. 그러나 비판만 있을 뿐 현실적 대안이 없는 점이 몹시 아쉬웠고, 이 비판 역시 뭉뚱그린다는 느낌이었다. 뭘 잘못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걸 먼저 분명히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특히 이명박과 박근혜, 조중동을 비판하는 대목이 자주 나오는데, 자본주의와 학벌, 경쟁 사회에 대한 문제점은 비교적 잘 드러나지만, 그래도 구체적인 정책(또는 방향)의 문제점을 콕 집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자본주의와 이명박 정권, 조중동으로 묶어 넓은 범위 내에서 비판을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글의 반복처럼 지루한 면이 있다.
그와 더불어 책에는 한겨레 신문사에 대한 칭찬이 많다. 이 책은 한겨레 출판사의 책이고 저자 역시 한겨레에서 편집위원이다.
올 여름은 유독 태풍이 우리를 많이 괴롭혔다. 볼라벤과 덴빈에 이어 산바까지 북상해 적잖은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태풍이 불어 올 때 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의 상흔을 다시 들추어본다. 아니, 들추어진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초등학교 5, 6학년 그 즈음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배 과수원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전형적인 농촌의 가정이었다. 그해 여름도 올 여름만큼이나 사납고 괴팍했다. 어느 누구도 성난 태풍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우비를 둘러쓰고 아버지와 나는 과수원에 갔다. 처참했다. 신문지 과일봉투에 싸여져 있던 배들이 나무에 매달려있지 않고, 땅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난 그 때,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놀란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 말 없이 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 뿐 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반드시 출세해야겠다는 생각이 싹텄고, 태풍이 오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항상 농민이나 어민과 같은, 소위 ‘못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