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네 옆에 새로운 동네가 생겼지만 나의 동네와 새 동네 사람들이 어울리는 일은 없었다 새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부리는 노새를 신기하게 여겼다. 어느 날 연탄을 실은 마차를 끌고 올라가던 언덕에서 노새가 멈춰 선다.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고 바라만 보는 상황에서 마차가 전복되자 노새는 달아나 버린다. 다음 날 새벽부터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지만 노새를 찾지 못한다. 밤이 되어 귀가하는 도중 대폿집에 들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자신이 노새가 되겠다며 히힝 하고 웃자 나도 아버지를 따라 웃는다.
<노새 두 마리>는 작가 최일남이 1974년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언뜻 보면 해학과 유머가 있는 단편 소설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시선으로 보면 당시 시대를 다룬 동화 같기도 하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누구나 읽기 쉽고 내용을 파악하기가 용이하며 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짧은 이야기, 아버지와 ‘나’와 노새를 다룬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시대의 무게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던 무렵을 배경으로 삼은 단편소설이다. 그러한 시대적인 배경에서 사라져 버린 노새와 이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아버지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많은 주제와 감성을 전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단순히 아버지와 노새를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 아버지들에 대한 헌정과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탄을 배달해야만 살 수 있었던 당시의 아버지들, 일을 해야만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당시의 아버지들, 평생을 그렇게 고된 육체노동에 헌신했던 아버지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이 이 작품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이 작품에서 시대를 읽을 수 있었다느니, 빈부의 격차를 나타냈다느니 하는 식의 감상이 많다. 물론 그러한 감상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노새, 그리고 연탄 배달이라는 직업, 구동네와 신동네로 갈라진 마을의 새로운 분위기. 그런 마을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는 근대화의 변화 등 시대의 변화와 빈부의 격차에 대한 주제가 부족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서 그렇게 시대적이고 환경적인 줄거리보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더 눈이 갔다.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해서 다룬 소설이다. 제목이 노새 두 마리인 것도 그렇다. 이 작품을 완성한 작가는 그 시대의 아버지, 모두의 아버지였던 그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빈부의 격차나 근대화로 인한 우리나라의 변화, 가난한 소시민의 삶 같은 원론적인 주제가 아니라 아버지, 라는 짧지만 울림이 큰 단어라고 생각을 한다. 보통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어떠한가? 누구든지 이 감정을 딱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