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의 1장에서 젠킨스는 시작부터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론적 측면에서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 번째로 역사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담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를 직접 창조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차지하고, 모든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 연구의 가시적인 대상인 세계의 조각난 편린이 바로 ‘과거’고, ‘과거’와 ‘역사’는 다른 것으로 서로 동일시될 수 없다. 과거와 역사를 구분해보면 우선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로, 역사가들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원상태와 별로 일치하지 않게 다시 옮겨놓는다. 과거는 사라지고 없지만, 역사는 역사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과거에 대한 구성물이라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까지 어릴 때, 불국사부터 서대문형무소 등을 관람하고 학창시절 좋은 역사 선생님들을 만난 덕인지 역사에 흥미가 많았다. 단순히 주입식으로 암기를 하는 것보다는 흐름을 파악하며 전체적인 구조를 공부하면 역사라는 소설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내가 마침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지난 시간 동안 접해온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평소 ‘누구의, 누구에 의한 역사인가’ 라는 질문에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인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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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역사과목을 필수로 배워온 학생들에게는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사란 그 자체로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배워 왔는데, ‘위하다’ 라는 말은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누군가에 의해 왜곡돼고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진 작가, ‘케이스 젠킨스’는 ‘권력을 위한 역사였다’ 라고 온 페이지를 통틀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사가 권력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역사는 권력자들에 의해 치우쳐 왔다고 말하며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대학을 입학하기 전, 초등학생 때부터 수능을 볼 때까지 역사를 필수과목으로써 배워 왔다. 12년동안 교과서에서 말하는 역사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것을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실이라 믿고, ‘역사’라는 학문을 ‘과거의 진실만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길 것이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는 역사학자 키스 젠킨슨이라는 포스트모던 역사연구가가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역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역사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역사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젠킨스는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의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에 있는 치체스터 대학교의 역사담당 조교수다. 독서라고 해봐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학서만이 전부였고, 역사서를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나에겐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용어를 이해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딱히, 어려운 문체나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키스 젠킨스는 지금 현시대를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정의하고 이를 기초로 보편적으로 역사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반론하며 이 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또한 젠킨스가 책을 통해 주장하려는 중요하고 종합적인 이야기는 책 제목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더 이상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이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스 젠킨스는 이러한 자신의 논점을 위해 이 책을 세 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끈임없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살펴보고 그에 따른 나의 감상과 생각의 깊이를 더하도록 하겠다.
본론
(1)역사란 무엇인가
첫째, 역사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담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직접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의 세계를 차지하고 이 세계에 모든 의미를 부여한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의 저자 케이스 젠킨스는 포스트모던 역사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역사학자이자 University College Chichester 의 역사담당 조교수이다. 나는 이 책을 한국사 공통교양의 과제로 만나게 되었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접하기 시작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서문의 내용과는 달리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젠킨스의 역사의 견해가 담겨있는 이 책은 내가 가지고 있던 잘못된 역사 인식과 무의식적으로 혼동하며 마구잡이로 썼던 용어들, 역사의 본질 등에 대해 반성하게 된 책이다. 이 글에선 젠킨스가 생각하는 역사의 정의,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 중 흥미로웠던 두 개의 답,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역사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그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내 개인적인 의견들이 어떤 흐름으로 생각이 이어졌는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사학과에 다닌다고 말하면 그들은 항상 이런 질문을 했다. ‘역사를 왜 배우나요?’ 혹은 ‘사학과 나오면 뭘 할 수 있나요?’ 처음 한남대학교 역사철학부에 지원했을 때 나또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질문에 당황하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한다. 비전 없는 과를 나왔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도 역사를 배우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처음에 과에 들어갔을 때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전공과목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1학년이여서 공부도 많이 안했고 중요성도 몰랐다 그저 놀기에만 전념했다. 그 수업이 얼마나 중요했던 것인지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저자 키스 젠킨스는 이 책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라는 주제보다 앞서 책 자체의 내용구성과 원어 제목으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Rethinking History’라는 말을 한글로 해석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언어학적 연습이 되어있다면 ‘Rethinking’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말한 제목과 함께 이 그림을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를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것을 깨부수고 나아갔을 때, 우리가 언제나 옳다고 여겼던 진리와 규칙들에서 벗어났을 때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저자는 그림 하나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란 과거와 현 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명제만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카가 책 한 권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 어쩌면 그것으로도 부족했을지도 모르는 내용이 한 줄 안에 들어 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역사와 관련하여 그 이상을 생각해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카가 제시한 명제에 갇혀있는 동안 키스 젠킨스는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을 넘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와 ‘역사’는 다른 것”이며, “역사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1)는 것이다.
역사 사료들은 저절로 쓰여 지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었다. 기록자의 권력이나 이데올로기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논의는 역사가의 기록 다음에 논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 이전에 '누가', '왜' 썼는지가 선행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했다. 역사 사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재 역사적 평가가 달라진다. 역사가의 이념과 가치에 영향을 받고 현재 권력에 따라 역사적 해석이 달라진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읽는 이의 해석도 역사라 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와 ‘역사’는 다르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하나의 담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