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연구소가 펴낸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처럼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기반한 새로운 스타일의 인문학 책, 다시 말해 세계와 지식을 ‘시각화’한 책이다.
책은 우리가 사는 세상, 즉 16세기 이후 약 4백 년 동안 형성되어 현대에 이르는 ‘근현대 세계’를 다루고 있다. 과학혁명, 사상혁명...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되고 싶은지 항상 고민해왔는데 이 글을 읽은 후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야 인간의 개별화가 등장했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과연 주체성을 가진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토론거리를 도출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성에 기반해 사고하며 타인과는 분리된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이다. 나는 이 토론거리에 긍정의 입장을 취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이 일정 수준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가족 등 태생적인 소속 관계나 비자발적으로 선택한 집단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극단적으로는 어렸을 때 겪은 가정폭력 등 정서적인 학대로 반사회적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여타 다른 생명들과 구분하는 것은 빛나는 이성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요즈음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와 국민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보는 시간을 겪고 있다. 최근에 화두로 떠오른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가려진 정부의 이면을 보게 되었으며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을 대표자로서 올바르게 행사하지 못한 정부에 실망한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며칠 전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하여 봉건 시대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대 우리나라는 봉건 시대로 역행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계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과 연관해 생각해보자면 어쩌면 사람들을 미성년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유인은 개인의 비겁함, 게으름이라기보다 국민들을 눈멀게 하는 사회구조의 강제 탓일지도 모른다.
내가 10장에서 처음으로 골라 읽은 글은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나라’이다.
10장의 많은 글들 중에 이 제목이 가장 눈에 띄였는데 제목을 보자마자 무엇인가 모를 기분 나쁜 감정이 솟아올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1등만을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나의 짧은 생각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이 글엣서 글쓴이는 미국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에서 부를 누리고 있는 1%의 상류층은 미국 사회의 40%가 차지하고 있는 중류층의 소득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부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상류층 부자들은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꺼려하게 되고 결국 일반 대중들에게 소원해지면서 다른사람 처지에 공감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글쓴이는 이러한 부는 권력을 낳고 그 권력은 부를 다시 부를 낳는다는 말을 통해 미국 사회는 지금 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