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36년의 지배는 해방 후 우리에게 근대화라는 지상과제를 부여했다. 한 마디로 근대화가 곧 생존의 보장 그 자체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에 대한 명확한 규정 없이 맹목적인 서구화는 우리사회에 빛 이상으로 그늘을 안겨주었다. 왕조국가에서 식민지를 거친 후 일방적으로 그것도 단시일 내에 미국에 의해 이식된 민주주의가 기존의 가치관과 충돌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잘 결합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다. 저자는 우리의 근현대사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아직 온전한 의미의 근대적 민족국가가 수립되지 않았다고 본다. 분단국가는 곧 '미완성' 국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미완성 국가인 한국에서는 대구 10·1사건, 제주도 4·3사건, 여순 사건, 한국전쟁, 군사쿠데타 등을 거치면서 반공이 최고의 가치로 공인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왜곡된 근대화로 드러나고, 왜곡되고 제약된 형태의 근대적 국민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