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국의 후예』식민지시기를 제외시키고, 조선 후기로부터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타당한 것인가? 전적으로 한국사의 내부에서 발전 요인을 찾으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역사적 실제는 이러한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일제하 전라북도 고창 출신 김성수·김연수 일가와 경성방직의 성장에서 한국자본주의의 기원을 찾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내재적 발전론처럼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까를 상상하지 말고, 일본의 침략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고 제안하며 그 표본을 경성방직으로 삼았다. 중소 직포업체로 출발한 경성방직이 일본 제국주의의 지원과 협력으로 만주와 중국 본토에서까지 사업을 펼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에커트는 한국에서 근대화의 기동력이 외부에서, 곧 일본제국주의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일본에 의한 근대화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저자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긍정하거나 미화했다는 논평을 비롯해 그간 많은 면에서 오해와 오독을 낳았으나 한국 근현대사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연구시각을 제시한 책으로 평가받았으며, 우리의 역사학계에는 전통적 수탈론에 도전한 다양한 식민지근대화론 계열의 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는 책이다.
1. 제국의 후예의 줄거리 요약
1부 한국 자본주의의 발흥
1. 상인과 지주 : 1876~1919년의 자본축적
한국은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거대 자본주의 열강들이 지배하는, 특히 일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경제에 처음으로 끌려들어 갔다. 새로운 시장을 기반으로 한국의 상인과 지주들이 상당한 양의 자본을 축적했으며, 이들 중 일부는 1920년대 이후 신흥 산업자본가계급의 중추가 되었다. 1976년 한국이 국제시장에 개방되어 그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본축적의 기회가 주어진 데서 시작하였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대규모 시장이 없었다. 조선에서는 양반이 굳건히 지주로 남아 있었고, 도시화가 제한되었다. 도시화를 통한 큰 시장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에도시대 상인가에 필적하는 규모의 조선인 전통 상인이 한성이나 다른 지역에 있었던 징후를 찾을 수가 없다.
조선의 시장 확대와 국제 무역에 가장 기여한 사람들은 객주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도시와 농촌 간의 중요한 상업 중개자였다. 그들은 창고업, 위탁판매, 운송 등의 사업과 외국상인들이 한국에 사업할 수 있도록 중매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 상인들이 자리를 잡으며 객주의 역할은 감소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동안 축적한 자본을 통해 지주가 되거나 일본인 기업가들과 협력하여 다른 사업으로 옮겨갔다.
근대적 기업을 세우고 자금을 대는 데 쓸 수 있는 여분의 자본을 축적한 것은 지주였다.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늘어나면서 논을 소유한 자들의 이윤도 커졌다.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보유한 토지와 토지조사 사업 등으로 일본 소유가 된 땅은 많았기에 일본은 조선의 최대 지주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뺏어간 토지는 대부분 한국 국유지거나 미개간 임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한국 지주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아니며, 오히려 1차 세계대전의 쌀값 폭등 등으로 일제시대에 한국 지주들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표적인 대지주 가문으로 고창 김씨가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함에 따라 멀리 떨어진 토지를 경영하는 데 관리인을 두게 되었다. 이는 기업가적 지주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의 후예』는 한국 경제 발전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이 책에서 에커트는 한국사회 자체의 발전은 불가능하였고, 일제가 이식한 자본주의, 자본가에 의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먼저 그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비판한다. 17~18세기의 일본과 비교해 한국은 대규모 시장의 부재, 상인 문화의 부재 등을 이야기 하며, 1876년 개항 전 까지 한국은 스스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구축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의 자본가 계급은 개항 이후인 1876년이 되어서야 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자본가계급의 성장은 1919년의 식민지정책 변화를 통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