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14년에는 편혜영의 《몬순》이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삶에 대한 깊이와 실험성이 돋보이는 대상 수상작과 우수상 수상작들을 소개하고, 각... 특유의 건조하고 치밀한 문장과 밀도 높은 서사를 통해 한국소설의 새로운 기반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온 중견 작가 편혜영의 《몬순》은 ‘정전(停電)’을...
혼의 방향이 어긋나고 있는 부부 관계의 이야기 속에서 단전, 몬순 등 다양한 상징적 요소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소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싶게 만든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파트의 정전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남편인 ‘태오’의 입장에서 서술 되는데, 과연 이 여성작가인 편혜영이 남성의 시각으로 보려한 것은 무엇일까? 또한 소설 속 등장하는 상징적인 장치들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리의 시대 상황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이 두 가지 의문점을 바탕으로 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1998년 소설인 <아내의 상자> 와 <몬순> 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으며 그 차이점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지, 소설의 제목인 <몬순>은 과연 말 그대로 기상학적 관점에서만 정해진 제목일지, 알아보고자 한다.
2가지의 단전
태오는 침묵함으로써 유진을 실망시켰다. 그 다음은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유진은 울먹였고 태오는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평소에 사소한 오해로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져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연인과 서로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다가 한순간에 폭발해서 관계가 끝난 적이 있는가? 당신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인간관계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이는 어쩌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다. <몬순>은 이러한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다룬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태오라는 한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아내 유진과의 관계가 나오게 된다. 이 비평문은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읽고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1. 줄거리
아파트에 단전이 예고됐다. 단전을 앞두고, 태오는 아내 유진을 두고 집을 나온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실상 대화가 없다. 태오의 이직조차 유진과 전혀 상의되지 않은 채 진행될 정도다. 두 사람에게도 행복했던 시절은 있었다. 그러나 아기의 죽음을 계기로 두 사람은 단절된다. 단전된 아파트 내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힘든 태오는 댄스라는 바에 가게 된다. 혼자 찾아간 바에서 과거 유진의 직장 관장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불편한 사이지만 둘 만의 대화를 시작한다. 관장과 얘기를 나누다 태오는 점차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태오는 아기가 죽던 날 아기를 집에 두고 나온 유진을 보았다. 유진을 좇던 태오는 그녀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댄스’라는 바의 문 앞에 서게 되지만,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한다. 집에 돌아온 태오는 아기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다시 바로 간다. 하지만 유진은 그곳에 없었다. 유진과 태오가 아기를 두고 집을 나온 사이 아이가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유진은 그날 자신이 일하던 과학관에 팩스를 보내기 위해 비즈니스센터를 갔던 것뿐이라고 말하지만, 태오는 그 말을 믿지 못한다. 단전이 일어나는 시간 홀로 댄스를 찾은 태오는 단전이 끝나갈 무렵 컴컴한 아파트 단지를 보며 유진과 대화를 나눌 것인지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에 다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접고 만다.
2. 인물분석
태오
소설의 주인공으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자신이 집을 비우게 된 계기인 유진의 수상한 행적이 곧 아기의 죽음을 가져온 빌미였다고 여긴다. 증명되지 않은 추측으로 아기를 방치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유진의 탓으로 돌리는 이기적 인물이었지만 관장과의 대화를 통해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입체적 인물)
ex) 가장 나쁜건 유진의 고의로 의심받는 것이었다. 유진을 탓하는 것은 부당했다. 유진 역시 아이를 잃었고 심지어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편혜영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재와 빨강’이라는 장편을 통해서였다. 그 장편을 읽으며 편혜영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받았던 인상은 매우 무미건조한 성격에 접근하기 어려운 오래된 노인을 보는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몬순’이라는 단편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짧은 문장을 이용해 최대한 비문과 오문을 없앤 정확한 문장과 모호하고 추상적이지 않은 서술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특히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불안한 감성과 이미지들을 묘사하려 들지 않고 이야기로써 풀어낸다는 점이 내가 받은 인상에 큰 몫을 했다. 처음 ‘몬순’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이 단어가 작중에서 무슨 뜻을 지니고 있겠거니 하며 무슨 뜻인지 찾아보지도 않은 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시종일관 모호했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구체적으로 일러주지 않았다. 또한 소설을 쭉 읽어 나가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몬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