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독일 문학계에서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다니엘 켈만의 소설 『명예』. 휴대전화, 컴퓨터, 인터넷 등 최첨단 통신 기기의 소통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의 위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느 날부터 마치 누군가 그의 인생을 가로채기라도 한...
지금까지 수업을 들으며 읽었던 모든 책 중 가장 맘에 드는 책이다. 한 달 내내 역사 관련한 소설만 보다가 봐서 더욱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허무하게 끝나는 각 에피소드와 상상의 여지가 풍부한 주제, 그리고 전체적인 서술 방식 모두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책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잉고 슐체의 심플스토리가 떠올랐다. 개성적인 인물이 각 챕터를 이루지만 동시에 전체적인 유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모자이크 기법을 사용했던 슐체의 소설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각 챕터를 담당하는 인물들 사이에 스쳐 가듯 비추어져서 각 개인이 서로 모르는 존재라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런 서술을 채택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사람과 부딪히지만 각자의 사정을 품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에서 생각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겹쳐 보여서 더욱 소설의 매력이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나는 뭔가 다른 타인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듯해서 기분이 오묘해졌다.
다니엘 켈만의 작품 「명예」는 독특하다. 이 책을 읽을 초반에는, 여러 개의 단편들이 모인 Omnibus구성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야기들은 크고 작은 연결 고리들로 이어져있었고, 이 때문에 나는 “이건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하기도 했다. 첫 이야기인 『목소리』에서는 통신사의 실수로 이미 사용 중인 번호를 받게 된 에비앙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영화배우인 랄프 탄너의 번호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에비앙은 현실 세계의 에비앙 자신과, 휴대폰을 통한 랄프 탄너의 인생 즉, 두 가지 삶을 살게 된다. 이전에는 휴대폰에 대해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 사건 이후 에비앙은 휴대폰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는 모습으로 변한다. 반대로 자신의 번호의 실제 사용자인 랄프 탄너는 자신에게 쏟아지던 연락이 뚝 끊긴 것에 대해 초반에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명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랄프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명예를 송두리째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