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근대에 이르러 우리의 육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대두하게 된 대에는 여러 철학자나 권위자들의 주장과 논리에 앞서 실질적으로 외모를 중시하게 된 사람들의 경향을 큰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시대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외모를 경쟁력 있게 가꾸고, 늙기를 거부하는 대에 힘쓰게 된다. 풍요로워지는 사회에 자신의 자본을 외모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점차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며 당연하게 몸으로의 관심과 중요성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니체와 윌리암 제임스, 죤 듀이 등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내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들은 기존의 몸과 정신이 분리되었다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몸과 정신은 하나이며 사실 정신은 몸의 행동을 위한 도구적 개념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전통적인 동양사상과 일맥상통하다고 한다.
Ⅰ. 스포츠 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
21세기인 현재,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성대한 전 지구적 행사가 4년마다 열리고 있고, 그 외에도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국제 스포츠 대회들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그 많은 대회들을 직, 간접적으로 겪으며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기도, 다른 나라 선수에 대한 평가와 비난을 하기도 한다. 마치 내가 경기를 뛰는 양 흥분에 차 응원하다가도 가끔 깊은 탄식을 하는 것은 이미 아무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당연한 현상이지만, 아마도 이 책은 이 단락에서 그 사실에 대한 재인식을 유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왜 우리나라 대표 팀이 하는 경기에 열중하며 온갖 관심과 열정을 쏟아 붓는가. 그들은 그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그 스포츠를 잘 하는 이들을 엮어놓은 팀일 뿐이고, 국제 경기는 그저 그런 팀들의 대회일 뿐이다.
체육이란
신체 활동에 의한 교육의 한 방법이다. 체육 자체가 몸 체(體)에 기를 육(育)으로 몸을 기르는 것이며 또한 많은 학자들도 일반적으로 체육을 교육인 동시에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 규정지으며 체육도 교육의 한 분야로 간주한다.
이때 교육이긴 교육인데 시대에 따라 무엇을 교육하는지가 달랐다. 일반적으로 20세기 이전에는 주로 이론에 근거한 신체의 교육과 발달을 목표로 했다. 결국 이때까지는 체육에서는 강인한 육체, 아름다운 근육 미 같은 것들을 최고로 추구해 왔다. 결국 신체를 통한 교육보다는 신체의 교육이 더 가깝다.
그러나 1930년대를 전후로 좀더 진보적인 교육 방식에 대한 선호가 커졌고 오늘날에는 과거의 체육 교육을 교육이 아닌 훈련으로 비판하며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의 모든 면을 강조했고 체육은 이런 것을 가르치는 교육의 수단으로 치부하게 됐다. 결국 체육을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또한 '체육과 스포츠의 철학적 탐구'에서는 학문의 입장에서의 체육의 본질 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모 전문가에 따르면 학문이란 것은 '조직적 방법'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연구 방법은 정해 진 주제에 의해 결정되며 연구하는 관점과 자료의 한계는 또다시 연구 방법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설득력을 가져야 하고, 또 보편 타당성이라 해서 학문적으로 지식이 있다면 누구나 다 그러하다라고 인정할 만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체육이 학문 성을 가지려면 첫째로 조직화 된 지식의 체계가 잡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기본적인 연구의 틀을 지켜야 하고 다음으로 두 번째의 조건에 의해 진행된 연구 결과가 신임을 얻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학술적인 논증도 이루어져야 한다.
신체 교육론
체육은 앞서 제시됐듯이 신체를 통한 교육의 한 방법으로 오늘날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신체 자체를 교육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하지만 신체 교육론에서 다루는 것은 신체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