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대표작『피아노 치는 여자』. 딸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어머니와, 그에 억눌려 욕망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하는 딸 에리카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어머니와 딸 혹은 여성 사이에도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피아니...
주인공인 에리카 코후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피아노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다. 그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로 만들기 위해 에리카의 모든 삶을 구속하고 있는데, 심지어 에리카가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오로지 피아노 연주와 연습에만 매진하도록 그녀를 속박한다. 과거 에리카의 십대 시절에 그녀의 사촌 오빠가 여름 방학을 맞아 그녀의 집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동네 처녀들을 후리고 다녔었다.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해 더욱 몰입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도 찾아 감상하였다. 그러나 이 책과 영화는 지금까지 내가 읽거나, 보았던 작품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용이 어려워 잘 읽히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는 작품이었다. 노골적인 성적묘사가 담긴 문장들이 많이 실려 있어서일까? 아니면 종속과 지배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비정상적인 현실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책을 무겁게 만들었다.
책 표지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이라는 커다란 글귀가 나를 끌리게 한 “피아노 치는 여자” 이 책은 먼저 페미니즘 적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여자가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모녀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동시에 과격한 성 담론이 나오기도 한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어려움에 대해서 자세하게 묘사와 서술을 하고 있다. 여성과 문학 이라는 교과목을 배우는데 있어서 페미니즘 이라는 주제는 매 수업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과거 여성에게 문학적 측면에서 어떠한 차별이 있었는지에 대해 배웠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문학에 접목해서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과제를 핑계 삼아 이 책을 읽었지만 쉽게 읽혀지지 않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읽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언제 다 읽나 한 숨을 쉬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격렬한 언어와 파격적인 내용은 나에게 억지로 읽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왠지 모를 매력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에리카를 향한 다양한 시선들은 그녀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어머니는 에리카에게 감시의 시선을 보낸다. 어머니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이상을 설정해 놓고, 이 목표를 향해 그녀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딸 에리카를 늘 추적할 수 있는 곳에 두려고 하고,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남자들을 멀리하게 하며, 동시에 옷가지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를 모성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개인적인 욕망도 자리잡고 있다. 새 옷을 사온 에리카에게 어머니가 “(...) 우리는 그 돈을 모아 나중에 새 아파트를 장만해야 한다구! (...)”라고 외친 것이나, ‘어머니는 일찍부터 에리카를 위한 예술적인 직업을 찾고 있었는데, 그건 (...) 노력으로 이룩한 품위 있는 예술성으로 돈을 짜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에리카를 원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