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희랍 비극의 근원이라는 고전 문헌학적 주제를 다룬 『비극의 탄생』. 20세기 철학, 문학, 예술과 음악, 심지어 정치에까지 심대한 영항을 미친 책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버금가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디오뉘소스와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의지와 표상, 도취와 꿈 등의 개념쌍, 그리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기원을 탐구하며, 예술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조명하는 철학적 저서이다. 니체는 아폴론적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라는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을 통해 비극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아폴론적 예술은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며,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혼돈과 도취를 나타낸다. 그리스 비극은 이러한 충동이 조화를 이루며 탄생했으나, 소크라테스적 합리주의와 에우리피데스의 개혁으로 인해 쇠퇴했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모든 것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비극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본다. 니체는 비극이 인간의 고통과 불합리를 예술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이었다고 강조하며, 현대 사회에서 디오니소스적 예술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극을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로 평가하며, 미래의 예술이 다시 비극적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비극의 탄생』은 단순한 문학 연구를 넘어 예술, 철학, 삶의 의미를 논하는 깊이 있는 사유를 담고 있으며, 현대 철학과 예술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비극의 탄생>은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가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서울시 전현직 관계자들을 취재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에는 물론, 사건 피해자의 변호인이었던 김재련 변호사와의 문답도 실려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의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여 박 시장에 의한 성희롱을 인정했고(성추행은 아니었다), 사법부는 별건 재판에서 판결문을 통해 박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했다. 국가기관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한 만큼, 언론을 통해 나 역시 박원순을 성추행 가해자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박원순의 자살에 대해서도 그가 '억울해서 자살했다'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고, 오히려 '잘못한 게 있으니 부끄러워 자살했다'고 보는 쪽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책에 담긴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손병관 저자를 두고 박원순을 옹호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 책의 출간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언론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니체, 그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흔히들 실존주의의 선구자, 또 파시즘의 사상적 선구자로 이야기한다. 그의 사상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이전까지 뿌리 잡혀 긴 시간동안 내려왔던 합리적 철학, 그리고 기독교의 윤리의식 등 그의 입장에서 본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부정하였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철저한 니힐리즘(nihilism)을 주장하여 인생의 영겁회귀(永劫回歸) 속에서 무가치를 주장하며, 선악의 피안에 서서 '약자의 도덕'에 대하여 '강자의 도덕'을 가지고 '초인'(超人)에 의해서 현실의 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함을 주장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로 넘어가는 19세기 말의 사회상태와도 관련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에 대해 읽어보았다. 아래에는 책의 인용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평을 나누어보려고 한다.
먼저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폴론적 경향과 디오니소스적 경향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폴론적 경향은 몽환적, 이지적인 것으로서 정적인 것을 가리키며, 디오니소스적 경향은 도취적, 환락적, 본능적, 열정적인 것으로서 동적인 것을 뜻한다. 아폴론적 경향이 조화, 문화, 질서 등의 정제된 형식을 추구한다면, 디오니소스적 경향은 야성적인 예술 충동을 발산하는 것을 추구한다. 아폴론적 경향은 몽환적 미(美)를 통한 순간적인 위안을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비극의 탄생에서 아폴론적 경향 앞에 나오는 단어가 ‘꿈’과 ‘가상’, 이 두 단어가 아폴론적 경향에 많이 보인다. 꿈과 가상이라는 단어처럼 지속될 수 없고 단편적인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가상’의 쾌락과 지혜는 결코 온전한 생의 체험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 디오니소스적 경향은 도취적이다. 현실을 망각하고 향락을 즐기며 자기 포기 상태에 이른다. 도취의 체험이야말로 진정한 생의 체험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