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Whitehead)는 17세기를 ‘천재의 세기’라고 불렀는데,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그 ‘천재의 세기’를 연 첫 번째 사람이고, [신기관](Novum... 주창한 [신기관]은 근대 과학정신의 초석을 닦은 저작이다. [신기관]이라는 제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서인 [기관](Organum)에 대한 대항적인...
“인간은 자연의 사용자 및 자연의 해석자”라고 베이컨이 한 이야기를 토대로, ‘자연을 복종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연의 질서에 대해 실제로 관찰하고, 고찰한 것만큼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이 자연에 대한 관찰과 고찰을 중시하였다.
베이컨이 이러한 주장을 한 당시 배경을 보면, 자연에 관한 연구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중세 말에서 근세 초기로 넘어가면서, 중세에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의 권위가 약해져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자연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본래에 인간이 침범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던 자연을 이 시기에는 알고자 하고, 더 나아가 지배하고자 했다고 한다.
사실 자연의 영역은 온전히 신의 영역으로 이루어졌던 시대를 생각하면 상상이 잘 안 된다. 내가 태어난 세상은 이미 인간의 이기심으로 자연은 얼룩져졌고, 중요한 주제로 생태문제로 떠오른 지는 오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구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었다.
1. 저자소개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에 국새상서이던 니콜라스 베이컨 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이 강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후, 스물세 살의 나이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이 해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치는 진언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나, 여왕의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1603년 제임스 1세가 직위한 후 급속히 권좌에 올라 1607년 법무차관, 1613년 법무장관, 1617년 국새상서의 자리에 오른 데 이어, 그 이듬해에는 대법관이 되었고, 같은 해 베룰럼 남작이 되었다. 1621년에는 세인트 올번스 자작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 왕실과 의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왕실의 특권을 옹호했던 베이컨은 의회의 공격목표가 되었고, 마침내 소송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영원히 공직을 떠나게 된다.
베이컨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그의 과학정신은 당대의 그 어느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