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작가 이기호의 단편소설보다 짧은 이야기 40편을 엮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박완서의 《세 가지 소원》,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에 이은 세 번째 짧은 소설로, 어디서나 펼쳐 읽기에 부담 없는 호흡으로 압축적이고도 밀도 있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일간지에 인기리에 연재한 짧은 소설 가운데...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단편소설들을 묶어 놓은 소설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소설들이 이따금씩 생각이 났다.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소설들은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서 '아 이런 말을 하고 싶으셨구나'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정확히 박히는 화살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났기에 간결한 문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대감이 들어 더 빠르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의 제목은 소설의 주제와 줄거리의 얼굴과 같다. 그렇기에 책 표지를 읽는 것은 그 소설을 이미 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책은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는 책이었다. 정말 다양한 연령층과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어느 누구라든지 '아! 이 이야기는 내 얘기구나' 하고 공감을 할 것이다. 내 얘기가 아니더라도 회색빛 사회에 물들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그렇지'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부천에도 중동이 있었다! 30년을 중동에서 살았다며 잔기침을 하는 할머니가, 그것도 두바이에서 갈아탄 비행기의 옆 좌석에 앉아 있다니! 중동이 그 중동이 아니고 부천의 중동임을 알았을 때, 메르스 공포에 질려있던 한 남자 승객이 지었을 그 표정을 상상하니 배꼽 아래 단전으로부터 파안대소가 터져 나와 온 몸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쌉싸름하면서도 뭉클한 다음 이야기들을 들을 준비가 되었다. 단편이라 할 수도 없는 콩트 40편을 담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속엔 결코 웬만하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떻게 이게 웬만한 거지?
제대로 된 집 밥 한 끼 먹고 싶어, 자기 목적에 친구를 적당히 이용하려 했던 친구를 따라 강원도 평창까지 가선 씁쓸한 중에도 배추 밭일 일당을 물어봐야 하는 처지의 졸업유예 대학생. 해수욕장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여자들에게 작업도 걸고 실컷 놀아보겠다던 호기가 주차장 아르바이트 이틀 만에 만신창이로 바뀐 세 명의 고졸 백수들,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까지 떠 앉고 살다 지쳐 차에서 번개탄 피우고 세상을 뜨려했다.
요즘 현대인들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쉽게 불안해한다. 이 책은 그 불안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익살스럽고 재치 있게 풀어 나간다. 한 남자의 첫 연애담, 아내의 출산, SNS와 현실과의 차이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일상의 불안함을 이야기 한다. 그런 소재들 속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들과 자칫 심각할 수도 있는 일들을 유머러스하게 잘 풀어낸다. 안전 불감. 사전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 뜻은 말 그대로 안전에 대한 무감각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작은 일에도 굉장히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후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메르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불과 몇년 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는 중동지역에서 발생하여 호흡기 질환과 고열을 동반하는 바이러스이다.
1. 序
언젠가 저자가 '좋은생각'이라는 월간지에 한동안 정기 연재할 때, 우리의 흔한 일상을 정말 재미있게 표현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아 저자의 이름을 기억해뒀었는데 최근 그의 신간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구매했다. 그런데 역시 창작을 업으로 삼는 모든 이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관찰력’이라는 감성 코드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기호는 등단한 지 무려 15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피로감 없이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독보적 이야기꾼으로 본인만의 독특한 행보를 이어온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신간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에 저자가 직접 선별한 40개의 소중한 이야기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서민들의 불안한 현실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우리의 현재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담고 있다. 그저 겉보기에 폼 나거나 세련된 사람들이 아닌 그냥 나와 비슷하게 좌충우돌 전전긍긍 갈팡질팡 하는 우여곡절 많은 평범한 사람들, 그렇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부닥치는 어떤 사소하고도 특별한 순간을 작가는 하나씩 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