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표제작인 <약지의 표본>은 기묘한 표본실에서 일하는 '나'와 표본 기술사인 데시마루 씨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심리적 교감이 섬세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몽환적인 세계를 그려낸 실험정신이 강한 이 소설은 오가와 요코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준다. 함께 실린 <육각형의 작은 방>은 사람들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약지 끝이 오랫동안 간질거렸다. 비스듬하게 잘린 약지에 대한 문장이 나올 때마다 나는 내 약지를 보면서 그 단면을 상상했다. 손 끝이 간지러웠다. 불쾌한 간질거림이었다. 미묘하게 균형을 잃은 왼손. 그래서 그녀는 데시마루 씨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라면 무슨 표본을 만들지 고민했다. 고민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감상들을 적는다.
- 표본으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
무언가를 표본으로 만드는 작업은 대단히도, 매력적이고 끔직한 작업이다. 박제시키는 것과는 또 다른 것. 나에게 있어 표본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가 있다. 사촌 오빠가 유독 곤충을 좋아했다. 특히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같은 갑각류 종류였다. 나하고 오빠는 벌레가 가득한 숲 속으로 돌아다녔다. 오빠는 나무에서 족족 벌레들을 찾아냈는데,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허리춤에 매단 채집통에 넣었다. 비단벌레부터 나비까지 갖가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