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김연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이 떠오른다. "산문은 모든 예술을 포괄한다. 한편으로 단어는 그 안에 온 세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자유로운 단어는 그 안에 말하기와 생각하기의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설을 쓸...
저자 김연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데 타고난 선생님 같았다. 책의 제목은 ‘소설가의 일’. 작가에 대해선 아는 정보가 없었고, 그렇다고 정확히 어떤 장르인지, 어떤 내용인지도 알아보지 않은 채, 소설가가 궁금한 나로선 그저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제목은 소설가의 일이니 소설가가 무얼 하는지 알 수 있겠다는, 게다가 실제 소설가가 말해주는 것이니 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과, 제목과는 달리 내 기대와는 크게 연관성 없는 얘기들을 그냥 소설가가 들려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반반이었다.
그런데 웬걸! ‘소설가의 일’은 수필인데도 불구하고 “소설가에 대해 알려주겠다!”, “소설가는 이런 직업이다!”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다른 책들보다도 더 디테일했고 실용적이었고 게다가 곳곳에 재치가 있었다. 그러니 소설가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펼쳐보더라도 가볍게 시작했다가 사람에 대해, 또 소설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한 발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해서까지 부담 없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싶다. 그가 소설가 혹은 소설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생과 닮은 부분을 얘기할 때면 실로 놀라웠다.
나는 책을 보기 전 뒤표지에 적혀 있는 글을 읽어보는 습관이 있다. 학창시절 소설 뒤표지 글을 읽다가 일명 스포를 당했다는 친구가 있었으나.. 이 책에 스포랄 게 있을까 싶어 걱정 없이 읽어봤다. 책표지는 단색 배경에 문장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문장의 내용은 이러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는 저마다 각자의 욕망이 있고, 그들 모두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생긴다. 모두에게 하나의 이야기가. 그 모든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는 셈이었다.’
글을 읽으며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김연수의 생각은 어떤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을 얘기하며 사람, 그것도 모든 사람이자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가들이 어떻게 작품을 작업하는지 경이롭기도, 신기하기도, 궁금하기도 하다.
소설가는 나와는 다른우주에서 살며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
난 그런 그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어떻게 소설을 작업하는건지 호기심이 항상 있었다.
제목만을 봐도 소설가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김연수 작가에 대해 아는게 없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이 책을 계기로 그를 알게 됐고, 완독 후에 그의 다른 책을 읽어 볼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김연수작가는 내가 읽지 않았던 책과 모르고 있던 작가들을 언급한다.
그럴수록 나의 독서목록은 부풀어 오른다.
없어지는 것보다 채워지는 것이 많으니, 마음이 바빠진다.
이 목록들 언제 다 읽지?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채움과 비움의 간극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열심히 독서를 해나가리라.
‘재능이라는 소설기계는 소설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기계 역시 소설가의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고안된 기계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위 문장은 이 책의 23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이며 나의 정신에 비수를 꽂아 아예 헤집어 버렸다. 언제나 말로만 생각으로만 소설을 써본다 하면서도 항상 책상 앞에 혹은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항상 딴짓을 하고 재능 탓을 하며 어떤 때에는 그것조차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것이 부지기수였으니 저 문장을 보고서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재능의 부재라는 울타리에 자신을 가둬놓고 포기했던 과거의 순간들은 혐오스럽고 후회만이 남는 순간들이 되었고 한동안은 책을 손에서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