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좋은 이웃」,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홈 파티」 수록
소설가 김애란이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 이후 팔 년 만에 새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공간 속을 떠다니는 감정의 입자를 포착하고 그것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특유의 능력을 예리하게 발휘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홈 파티」와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좋은 이웃」을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안녕이라 그랬어』는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과 딜레마적 물음으로 한 세계를 중층적으로 쌓아올리는 특장이 여전히 발휘되는 가운데, 이전보다 조금은 서늘하고 비정해진 김애란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희곡 속 사건은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홈 파티」, 42쪽)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이번 책에서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은 집주인의 미감과 여유를 짐작하게 하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공간이거나(「홈 파티」), 값싼 물가와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여행이라는 “생애 처음으로 누리는 사치”를 가능하게 하는 해외의 단독주택이다(「숲속 작은 집」). 또는 정성스레 가꾸고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새 집주인을 위해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전셋집이거나(「좋은 이웃」), 회사를 관두고 그간 모은 돈을 전부 털어 문을 연 책방이기도 하다(「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삶 그 자체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방 한 칸’이 가지는 의미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묘사해온 바 있는 김애란에게 어떤 공간은 누군가의 경제적, 사회적 지표를 가늠하게 하는 장소이자 한 사람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긴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장소이다. 때문에 이번 소설집에서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서로의 삶의 기준이 맞부딪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로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김애란은 「홈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24쪽) 타인의 공간을 방문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확장의 길이 될까, 아니면 서로의 기준을 꺾어 누르는 침입의 길이 될까. 어느 때보다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로 나아가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눈앞의 풍경과 나와 관계 맺는 사람이 돈으로 치환 가능한 숫자가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김애란의 질문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렇게 바꿔 물을 수 있다. 공통의 포기와 낙담을 경험하고 다시금 새로운 출발선이 펼쳐졌을 때, 과연 그전과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지켜졌느냐고. 또는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지켜져야만 하느냐고.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안녕과 평안을 묻는 일이 더없이 간절해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김애란식의 인사일 것이다.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제목부터 마음 한 켠을 따뜻하면서도 아련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안녕’이라는 말은 때로 이별의 인사이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삶 속에서 경험했던 여러 ‘안녕’의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 안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안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단순한 작별 인사 이상의 것임을 깊이 느꼈다. 누군가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삶에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그럼에도 그 시간을 감사히 기억하겠다는 마음이 함께 담긴다. 나도 살면서 ‘안녕’을 수없이 말하고, 또 들었다.
특히 대학 시절 친한 친구와 헤어졌던 일이 기억난다. 그 친구는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었고, 우리는 마지막 만남에서 ‘안녕이라 그랬어’라고 서로에게 말했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청소년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나는 이 이야기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성장, 상실, 불안, 불완전한 안녕에 대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내가 겪어온 시간들과 교차되는 경험의 조각들이었다. 이 책은 단지 한 편의 소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나온 과거를 되짚고, 내 삶의 몇몇 순간을 다시 마주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청소년의 일상이나 상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청춘이 겪는 혼란과 외로움, 성장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정교하게 직조해낸 작품이다. 김애란 특유의 섬세하고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문체는 독자에게 한 소년의 내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안녕'이라는 말은 이별의 인사이면서 동시에 인사를 건네는 시작이기도 하다. 이중적인 이 말의 의미는 주인공의 정서 상태와도 맞닿아 있다. 친구의 죽음을 마주한 주인공이 세상과,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건네기까지의 긴 여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우리 삶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이별’과 ‘상실’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고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김애란 작가는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를 통해, 일상 속 작고 평범한 순간들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이 책은 단순히 ‘헤어짐’이라는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안녕’이라는 인사를 둘러싼 인간 내면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탐구하며,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들은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로 읽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간관계의 유한함’과 ‘그 안에서 맺는 연결고리’라는 중심 주제를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