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의심을 다루고자 했던 핍립 얀시의 책을 골랐다. 감정을 말하면 무언가가 수준이 낮게 평가되는 느낌이 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인 의심이 아닌 감정적인 의심에 대해 다룬다고 하는 필립 얀시의 책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리처드라는 청년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그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고 2주간 칩거하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세 가지 질문은 이렇다.
1.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왜 하나님은 일관성 있게 악한 자들을 벌하시고 선한 자들을 상 주시지 않는가? 왜 명확한 규칙 없이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2.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하나님이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왜 그 뜻을 좀더 쉽게 보여 주시지 않는가?
1. 저자 소개
필립 얀시는 어린 시절 미국 남주의 근본주의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하나님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절대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게슈타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소아마비를 앓던 아버지가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면서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실망을 겪었다. 자라면서 그가 경험한 기독교는 인종차별을 비롯한 현실의 문제에 눈 감는 ‘부유한 백인들만의 종교’였다.
성인이 된 후의 자신의 삶을 가리켜 ‘교회의 독성’으로부터 외복하는 과정이었다는 농담을 줄곧 하는 그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기독교 현실에서 진정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의미인지를 일깨우는 작품들을 써왔다. 문학, 신학, 인문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섭렵하면서 갈고 닦은 예리한 지성과 정치한 필력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회의를 다른 어느 작가보다 진지하고 솔직하게 다루어왔다. 또한 그는 깊이 있는 신학적 이론을 가장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환경의 그리스도인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 즐기는 그는 1992년부터 콜로라도 로키 산맥언저리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2. 책 요약
필립 얀시는 리차드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신학계에서 촉망받는 리차드는 욥기에 대해 논문을 적었는데 필립 얀시가 자신의 논문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제안을 받아서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 사45:15
리처드는 대학 때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에서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하면서 기도했으나 이혼했고 , 부모님의 재결합을 위해 기도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기도했으나 결국 약혼녀와 헤어지게 된다. 계속 실망한 리처드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시험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스스로 표시해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리처드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다. 아무 소리도, 아무 형상도, 아무 기적도.... 리처드는 성경을 태워버리고 하나님을 떠난다.
리처드의 질문을 들은 필립 얀시는 몇 개월을 그 고민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나님은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만일 그렇다면 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손을 쓰지 않으시는가?
모든 일에 대해서는 아니더라고 최소한 그중의 일부분이라도 해결하셔야 하지 않는가?” 필립얀시는 리처드와의 대화를 곰곰 되짚어 보면서 그의 감정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그 세 가지 질문은 첫 번째 “하나님은 공평하신가?”하는 질문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하는 질문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숨어 계신가?”하는 질문이다. 리처드는 만일 하나님이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신다면, 아니 그중에 한 가지 질문이라도 대답하신다면, 그는 다시 하나님을 믿을 거라 얘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고 계신다.
1. 아무도 대놓고 묻지 않는 세 가지 질문
가. 첫 번째 질문,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가?”
애써 하나님을 따르려고 했지만 인생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비참한 자신의 상태와 하나님 나라의 상금, 행복한 삶을 이야기하는 성경말씀의 약속을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겠는가?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했는데도 사회적으로 여봐란 듯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사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질문이 아니다.
욥이나 시편 기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있었던 아주 오래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