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역작 『호라이즌』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배리 로페즈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한 책으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논픽션이다. 북극, 남극, 북태평양, 남태평양, 아프리카, 호주 등 여섯 지역을 갈무리해, 하나의 교향곡처럼 아름답고 치밀하게 재구성해냈다. 로페즈는 이들 장소를 배경으로, 북극권 지역으로 용감하게 파고든 선사시대 사람들,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주의자들, 태평양을 항해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인들, 외교의 문을 걸어 잠근 아시아로 건너간 미국인들 등을 엮어 탐험과 여행을 둘러싼 인류의 오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한편, 인류의 기원(인류학), 땅의 역사(지질학), 생물들의 뒤섞임(생물학), 탐험과 식민주의(정치),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과학적 성찰(윤리학과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들을 탐색해나간다.
이 책의 키워드가 되는 ‘여행’은 로페즈에게 지혜를 모으는 활동, 자신을 바꾸는 행동이다. 그는 익숙한 것의 경계를 넘어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났고, 눈앞의 풍경을 보면서 기꺼이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더불어 각각의 장소를 거쳐 간 인물들을 호명하고 서로를 탁월하게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노정하는 모순을 외면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기꺼이 끌어안으며 끝내 초월한다. 저자가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주는 지구 곳곳의 풍경과 사람, 과거와 현재는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가. 시공을 초월하는 이야기들
나는 몇 해 전 가족들과 함께 시애틀을 출발하여 오리건주 해안을 북에서 남으로 거쳐 내리면서 포틀랜드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주한 바닷가 풍경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태초의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숲을 만나기도 했고, 태평양의 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기가 막힌 풍경에서 내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그저 대자연의 장엄함, 곳곳에서 마주하는 그곳 사람들의 푸근하고도 여유로운 삶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그저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흥분을 제외하면 그저 한가하게 길을 달렸다는 말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나의 그런 소극적 여행과는 질이 다른 여행을 했다. 그것도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의 오지와 극지를 탐험했다. 거기에 그의 엄청난 호기심과 독서가 교차하며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의 이야기는 공간적으로는 남극의 극지방에서부터 북극 인근의 툰트라 지역까지 광범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