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세기 만화경에서 찾아낸 21세기 우리의 자화상”
‘보스턴 결혼’의 유래가 된
헨리 제임스의 중기 대표작 국내 초역
근대 영미문학의 대표 작가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1886)이 국내 처음 출간된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19세기 보스턴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기이한 삼각관계를 통해 격변하는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당대에는 보스턴이 품었던 진지한 열의를 희화했다고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실적으로 관조했다는 평가와 함께 그의 중기를 대표하는 실험적 소설로 남았다. 아울러 ‘보스턴 결혼’(돌봄과 연대감, 로맨스가 가미된 두 여성 간의 관계)의 유래로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많은 진보적 논의가 쇠퇴하는 오늘날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오는 문제작을 이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Ⅰ. 서두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진보와 개혁의 성지로 꼽히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 『보스턴 사람들』은 레스비어니즘(lesbianism)의 뉘앙스를 풍기는 ‘보스턴 결혼’을 실천하는 신여성의 뜻을 함의하고 있다. 단지 불특정 다수의 보스턴 사람들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18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헨리 제임스는 남북전쟁 시절(1861-1865), 보스턴의 하바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1년 후엔 자퇴하였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발동한 것이다. 그는 그 후 글을 쓰며 유럽의 이방인으로 살다,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는데 분개하여 영국으로 귀화하고 만다. 그러나 사망 후엔 보스턴의 가족 묘지에 묻히게 된다. 가족 묘지가 보스턴에 있다 보니, 그동안 그는 아버지나 형의 장례 참석차 보스톤을 여러 번 방문하였었다. 이렇게 이 소설 창작에 영감을 주었던 보스턴은, 유럽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미국에서 그래도 상당한 인연이 있었던 도시였던 것이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암시하듯 페미니즘으로 시작해서 페미니즘으로 끝난다. 놀랍게도 바로 처음부터 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직진하고 있다. 작품이 발표된 1886년이면 어느 정도의 옛날인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을 빌미로 청군과 일군 사이에 조선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청일전쟁이 일어난 해가 1894년이니, 1886년은 우리 근대의 시작인 동학 농민운동보다 조금 앞선 시기이다. 우리로 말하자면 근대 이전인 까마득한 옛날에, 미국 보스턴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대의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다. 한마디로 놀랍다. 서양 특히 미국에서 ‘페미니즘’은 요 근래 나온 어젠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Ⅱ. 전개
보스턴에 사는 주인공 올리브 챈슬러는 불우한 외가 친척 청년 베이질 랜섬을 초대한다. 외사촌이라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다. 남북전쟁으로 몰락해버린 외가를 몹시 돕고 싶어하셨던 생전의 엄마를 생각해, 가난한 친척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