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작은 빛을 따라서』는 내장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필성슈퍼’를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여섯 식구를 책임지고 있는 슈퍼는 주변에 입점한 대형마트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와 아빠는 손님의 발걸음을 되돌리기 위해 ‘두부 한 모라도 배달’을 중심으로 여러 방안을 마련해보지만 돌아선 발걸음은 꿈쩍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 은동은 할머니와 비밀스러운 한글 수업을 통해 자신의 오랜 꿈, 배우가 되기 위한 첫발이 되어줄 ‘연기 아카데미’의 학원비를 모으고 있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매출이 나아지기보다 더 악화된 슈퍼는 급기야 공과금을 비롯해 급식비, 학원비까지 밀리게 되며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필성슈퍼 가족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현재 SNS에 유행하는 유전자 만능론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유전자 만능론이란 ‘유전자를 잘 타고나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고 유전자를 잘못 타고 나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이론을 뜻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될 놈 될(될 놈은 된다)’과 같은 맥락의 유행이라고 보이는데, 이러한 사회의 흐름은 노력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고 변화에 대한 의지를 없애버릴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점차 대한민국을 어둠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내장산으로 가는 길목, 정읍시 천변 어귀에 ‘필성슈퍼’를 운영하는 한 가족이 있다. 구성원으로는 할머니, 엄마, 아빠, 고3 큰딸 은세, 고2 작은딸 은동, 여섯 살 막내딸 은율 총 여섯 식구다. 고모는 이 슈퍼 운영으로 큰 재산을 축적해 서울에 건물 하나를 올리고 이사했다. 할머니는 아들도 슈퍼에서 크게 돈을 벌어 자신의 고향에 마을회관 하나 세우며 명예를 드높이는 게 생전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뜻밖에 동네 주변에 대형마트가 입점하기 시작하자 매출이 크게 악화되고 생계유지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와 아빠는 한 명의 고객도 유치하고자 하는 마음에 필살기를 계획한다. ‘두부 한 모라도 배달’, 김장철에는 ‘배추 한 포기라도 절여드립니다.’ 홍보문을 만들어 가게 문 앞에 붙이고 실행하는가 하면, 시들어가는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급기야 아빠는 트럭을 타고 섬 위도로 행상을 나가기까지 여러 방안을 강구한다.
그 가운데 둘째 딸 은동은 할머니와 함께 교회 사람들과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큰글자 성경을 봉독해달라는 교회 집사의 요청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문맹을 알아차린다. 할머니에게 한글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학원에 다닐 것을 권하지만, 은동에게 삯을 줄 테니 가족들 몰래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은동이 비밀리에 품고 있는 꿈은 배우다.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전주에 있는 배우 아카데미에 1개월 수강 등록을 하는 것이 첫 목표다. 등록비 마련을 위해 슈퍼 배달, 집안의 잔심부름을 기꺼이 도맡아 하는 은동은 학원비를 더 많이 모을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며 이내 할머니의 제안을 수락하고 가족들의 눈길을 피해 가족들 몰래 한글 수업을 시작한다.
할머니와의 한글 수업은 첫날부터 녹록지 않다. 연필 잡기부터 어려워하셔서 어쩔 수 없이 선긋기부터 가르친다. 수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본인의 이름, 가족 이름의 모양을 구분할 줄 알게 된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이 딸이라고 서운하다고 황서운으로 지어진 줄 알았는데, 막상 주민등록증의 이름이 황 서(상서로울 서), 은(은혜 은)이었음을 깨닫고 감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