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금 시장에도 몇몇 작가의 대표작을 뽑아 수록한 책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교과서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작가의 흔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어휘나 문체, 편집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없는 작품이 많다. ‘한국소설의 얼굴’은 작품의 수록 뿐 아닌 발굴에도 힘썼다. 작품을 접하고 싶어도 시장에서 접할 수 없어 읽지 못했던 ‘희귀본’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다. 처음 작품이 수록된 잡지나 책을 발굴해 싣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읽는 당시 작품들은 새로...
소설 <라울전>은 소설가 최인훈의 등단소설로써 1959년 [자유문학]에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함께 게재된 작품이다. <라울전>은 최인훈의 문단으로의 첫 옥지로, 그의 초기 작품상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그의 작품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첫 어귀라 할 수 있다. 최인훈은 역작 <광장>으로 유명한 작가로, 그의 작품은 대체로 절대적 세계 앞에서 좌절한 미약한 주인공이 꿈·환각·환청·내적 독백 등의 환상적 세계를 매개로 나아가는 일대기적 성격을 띤다. 그는 역사를 빚어낸다. 내적으로는 주인공의 자아성찰과 진보의 과정을 그려내며, 외적으로는 결핍된 세상의 역사화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선 이런 내·외적 환경과 상황이 켜켜이 쌓여 어떠한 아득한 층계를 이룬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구운몽>에서의 고고학에 대한 진술로 그의 세계관과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을 다루는 작업. 목숨의 궤적을 더듬는 작업. 그것이 고고학입니다. 우리들의 작업대 위에 놓이는 것은 시체가 아니면 시체의 조각입니다……우리들의 작품을 가리켜 생명이 넘쳤다느니, 창조적이라느니, 허구의 진실이라느니 하고 칭찬할 때는 사실 낯 간지러집니다. 고고학자란 목숨이 아니라 죽음을, 창조가 아니라 발굴, 예언이 아니라 독해를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역사란, 신이, 시간과 공간에 접하여 일으킨 열상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상처가 아물면 결절한 자리를 시대 혹은 지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속에 신의 사생아들이 묻혀 있습니다. 신은 배게 할 뿐. 아이들의 양육을 한 번도 맡은 일없이 늘 내깔렸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 지층 깊이 묻힌 신의 사생아들의 굳은 돌을 파내는 일입니다. 캐어낸 화석들은 기형아가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토막토막난."
최인훈의 소설은 "고고학"인 동시에 "고문"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는 거대한 골리앗에 대항하는 소신 있고 지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