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창비세계문학' 38권. 홍콩을 대표하는 작가 류이창의 장편소설 <술꾼>이 국내 초역되었다. 이 작품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시도한 중국어권 최초의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인민문학출판사 등이 주관한 '100년 100종 우수 중국문학도서', 홍콩 「아주주간」이 주관한 '20세기 중문소설 베스트 100', 홍콩 펜클럽이 주관한 '20세기 홍콩소설 베스트 100' 등에 선정된 바 있다.
소설의 화자는 단신으로 고향 상하이를 떠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홍콩에 도착한 이주자로서 생활을 위해 신문에 무협소설을 연재하긴 하지만 중국의 고전문학과 현대문학뿐만 아니라 서양문학에 대해서도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 화자는 무엇보다도 문학의 예술적 가치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로, 금전만능적 사회인 홍콩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순문학 잡지를 창간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화자는 잡지 편집일을 하면 할수록 생활이 곤궁해져 나중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황색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그는 홍콩에서 순문학 잡지를 발행하는 것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게 된다. 그는 현실 적응과 이상 추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여급들에게 싸구려 사랑을 사곤 한다.
이런 화자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 바로 세 들어 사는 집의 정신이상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화자를 오래전 일본군의 폭격에 죽은 자신의 아들로 생각해 음식을 차려주거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급기야 화자가 현실에 절망해 자살을 시도하자 거금의 돈까지 주며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00년대 중반의 홍콩은 급변하는 사회 요소들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상업의 형성으로 인해 급격히 성장하는 도시, 중국 내륙의 핍박과 혼란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하는 타지인 등과 더불어 여러 사회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에 기반하여 홍콩만의 독특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나타날 수 있었다. 류이창의 《술꾼》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현대적 창작 기법을 통해 홍콩인과 홍콩 문화를 묘사해냈으며, 나아가 홍콩이라는 도시 그 자체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술꾼’으로 묘사된 주인공을 중점적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홍콩의 정체성과 당시 홍콩인들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