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번안물로 근대를 꿰뚫다!
1930년대 식민지와 1960년대 근대화의 현장을 오가며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번안의 흔적을 살펴보는 『번안 사회』. 다양한 문화 현상을 덕후의 입장에서 분석해온 사회학자 백욱인 교수가 이번에는 우리가 먹고 쓰고 입고 누리고 즐기는 모든 것에 자리한 번안의 흔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은 서양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일본을 통해 서구의 근대 산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이 한 번 번안한 일본식 양식을 번안해야 했는데, 이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과정에 차용되어 다시 한 번 번안되었다. 이러한 반복된 번안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가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 우리 일상에 식민성이 과연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든 현실을 가져다주었고, 그 결과 우리는 식민 잔재의 청산을 말하는 동시에 식민지의 유산을 향유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저자는 패션, 음식, 주거, 도시환경 등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시작해서 소설, 만화, 미술, 버라이어티 쇼, 음악 등의 문화·예술 장르는 물론이고 기술, 학문, 언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 번안의 역사를 다루고, 그중에서도 특히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중 번안이 1960년대 산업화 시대에 왜, 어떻게 그대로 반복되었으며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 주목해 한국 근대를 재조명하는 한편, 거기서 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살피고자 한다.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붕어빵을 먹으며 ‘붕어빵과 잉어빵이 어떻게 다른지’,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을지 꼬리부터 먹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많아도, ‘붕어빵의 뿌리가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붕어빵이 사실은 일본 ‘도미빵’의 번안이며, 일본의 ‘도미빵’은 서양 ‘와플’의 번안임을 아는 사람은 붕어빵의 뿌리를 궁금해하는 사람보다도 적을 수밖에 없다.
‘번안사회’는 붕어빵을 비롯하여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식민지 번안의 흔적들을 다룬다. 그때는 붕어빵이 ‘서구 번안의 번안물임’을 몰랐다고 해도, 이제는 그 원류를 바로 볼 때도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지은이는 일본에 의해 번안되고 이식된 서양 문화의 원류와 번안 과정을 파악하고 직시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식민지 번안을 넘어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