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미동맹은 어떻게 불가침의 성역이 되었나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제시하는 새로운 한ㆍ미관계
대표적인 한ㆍ미관계 전문가로 활동해온 국립외교원 김준형 원장의 역작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가 출간되었다. 한ㆍ미관계 150년 역사를 촘촘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 대외정책의 핵심 상수이자 견고한 신화로 자리 잡은 한미군사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한다. 특히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최근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사드 배치, 미ㆍ중 전략경쟁, 한ㆍ미ㆍ일 군사동맹 강화, 남ㆍ북ㆍ미 대화 등을 충실하게 논평하고 있어 토론거리가 풍성하다.
한국에게 미국은 전쟁에서 구원해준 은인이자 공산주의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힘센’ 우방이다. 또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모본이자 그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는 세계 최강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발언과 행위는 맹렬하게 공격받고 ‘빨갱이’와 ‘친북’으로 낙인찍힌다. 정작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태도 앞에서 주권국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관성을 일방적인 한ㆍ미관계에서 초래된 ‘가스라이팅’ 상태라고 진단한다. 한국은 오랜 시간 불균형한 한ㆍ미관계를 유지하느라 애쓴 탓에 합리적 판단을 할 힘을 잃었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희박해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입장과 이익을 추구할 기회는 물론,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대체로 실패해왔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동맹 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건강한 한ㆍ미관계를 만들어가는 길임을 역설한다.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는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한국의 외교를 역사적으로 조명한다. 한국은 과거 중국의 그늘 아래에서 소극적인 외교를 펼쳐왔다. 비교적 국지적인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 일본의 개항 요구 아래에서 급진적 전개를 맞이했다. 다만, 한국의 개항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비교적 더딘 편이었다. 기존의 한국은 외교 정책에 있어 폐쇄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위정척사는 ‘진짜는 지키고, 가짜는 배척한다.’(p35)라는 뜻으로 반외세 저항을 표방했다. 그렇지만, 반외세뿐인 정책은 한국의 내부적 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개항을 늦추어 역효과를 낳았다. 또한 뒤늦은 개항으로 인해 경험이 부족했고, 조선은 조선의 외교적 무지와 열악한 국력으로 인해 불평등한 조약에 묶이게 됐다.
일본과 미국 모두 한국에게 불평등한 조항을 담은 조약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일본에 비하여 진전된 측면이 있다. 일본의 치외법권이 영구적으로 부여됐다면 미국에게는 잠정적으로 부여하고 차후 법을 개정한 이후 미국민 역시 조선의 법을 따른다는 사실을 명기했다.(p34) 또한 조미수호통상조약 8조에는 인천항에서의 쌀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조선의 강력한 요구로 인한 조항이다.
그러나 미국도 조선과의 최초의 조약부터 자국의 이익을 확실시 하는 독소조항을 기입했다. 최혜국대우권은 강화도조약에도 없던 불평등조약이다.(p36) 미국의 신사적인 면모 뒤에 감추어진 속내는 18세기 워싱턴 대통령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행동의 가장 큰 법칙은 상업적 관계는 확대하지만 정치적 연결은 최소화하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데 근원이 있다. 즉, 미국은 장기적으로 타국과의 교류에서 직접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다. 고종이 위정척사를 통해 전면적으로 배척하던 외교적 구상과 달리 미국은 일찍부터 실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유연한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1항은 거중조항이다. 당시 조선은 이 조항을 일본으로부터의 침략을 억지할 것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