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어머니와 딸, 삶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은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로 21세기에도 만연한 젠더 불평등의 핵심을 명쾌하게 요약하며 명성을 얻은 바 있는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숱한 화제를 일으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외에도 《걷기의 역사》, 《이 폐허를 응시하라》 등 작가의 다양한 관심과 면모를 보여주는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다양한 면모를 가장 통합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읽기와 쓰기, 고독과 연대, 병과 돌봄, 삶과 죽음, 어머니와 딸, 아이슬란드와 극지방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부터 《백조 왕자》, 《눈의 여왕》 같은 구전 동화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활용해 주변의 여러 삶들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마침내 이해한다. 저자는 이런 따뜻하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가 우리의 삶과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관찰한다.
둘째인 동생과 막냇동생에게 이건 다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 대혼란이, 여태까지 어머니의 병이나 불평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와 나 사이의 비밀로만 남게 된다면, 내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형제들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들이 각자 부담을 나누어 가졌지만, 응급 상황이 닥쳤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거는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한 번은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고 늘 나만 찾느냐고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너는 딸이잖아."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는 온종일 집 안에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 작가의 삶은 그렇게 묘사될 수도 있었다.
-> 사람들은 내가 노는 줄 안다. 사실 논다. 정확하게 보고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한 시간을 걷는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7월 8월에는 너무 더워서 걷지 못하는 날도 많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밥을 먹고 또 책을 읽는다. 사람은 거의 1년에 한 두 명 따로 만나고 자주 만나지 않는다. 이전에 경계가 없을 때는 사람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으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글을 쓰니까. 보고 싶은 사람은 가끔 보는데 할 말이 없다. 마흔이 넘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변한 것 같다. 나는 일을 바꾸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싶다. 존재감 없이. 놀고 있는 지금 나는 가장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일을 하기 위해서 길러진 사람들이 있을까? 회사 생활이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 지켜보건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삶의 모습이 다들 비슷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모습으로 계속 살 수가 없었다. 모든 것 중에 가장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 나는 많은 일을 하는 그 어느때보다 태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