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67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뱁새족>은 집필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대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 그리고 박경리의 필치가 생생히 살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뱁새족>의 이야기는 때로는 수다스럽게, 때로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독자들은 박경리의 전작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뱁새족>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에 쓰인 작가 박경리의 여타 작품들이 연애소설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뱁새족>은 1960년대 지식인과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소설로, 불란서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유병삼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주인공인 유병삼의 냉소적인 시선을 통해 당대 상류층의 허세와 외국의 문물을 추종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유병삼의 눈에 비친 당대의 뱁새족들은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계급, 혹은 계층에 편입되려고 하는 욕망의 전투를 펼친다. 황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노력과 욕망이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는데, 그 비극은 책을 읽는 제삼자에게는 오히려 희극으로 느껴진다.
1. 뱁새족
최초에는 압구정에 모여들었던 부유층 젊은이들의 문화를 일컬었으나, 이후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 소비적 문화에 열중하는 철부지 성향을 의미하는 오렌지족과 80년대부터 등장한 오렌지족들이 번화한 밤거리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 차를 세운 후 창문을 내린 후 "야, 타."라고 하면 여성들은 남성이 맘에 들면 차에 타고 같이 놀면서 밤을 보내는 형식이었던 야타족과 같이 ‘-족‘이란 형식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의 속성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즉, 가랑이가 찢어져도 자신의 능력과 신분을 뛰어넘기 위해 무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 소설에서는 이런 ’뱁새족‘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희극적으로 드러난다.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중략) 한밑천으로 사내 발목을 묶어놓으면 어부인으로 승격을 믿어 마지않는 요정의 마담, 많죠. 생략하기로 합시다.
2. 줄거리
‘병삼’은 과거에 엿을 팔아 재산을 어느 정도 축적한 중상류 층 집안의 사람이다. 파리로 그림 유학도 다녀오고, S대 강사 자리를 맡았을 정도로 잔뼈가 굵은 병삼이지만, 재능이 없다는 사실로 고민하던 중, 여학생과의 해프닝으로 강사 자리를 그만두게 된다. 병삼의 유일한 혈육인 ‘유 여사’는 이러한 병삼의 처사가 탐탁치만은 않다. 유 여사는 아무런 도움 없이 소위 말하는 ‘뱁새짓‘을 해가며 돈을 모으고, 황새들과 끊임없이 사교를 나눠왔기에 그들과의 신뢰가 두텁다. 그런 유 여사는 병삼을 출세시키려 부자 집안의 사람인 은경과 병삼을 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