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내 안의 중심을 세우는 리더들을 위한 맹자의 명쾌한 인생 강의
고단한 세파를 온전히 감당해 낼 근기를 갖추는 일,
결여로부터 벗어나 진정 자유롭게 세상을 대하는 일,
나를 진정으로 성찰하는 힘을 갖추는 일,
근본을 확보하여 기준을 장악하는 일…
애초 시효가 없는 이와 같은 당당한 삶의 조건을 우리는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정치학의 교본이고, 누군가에게는 수신의 철학서요, 누군가에게는 처세의 지침이 되는, 2300여 년의 시간과 시대와 지역을 넘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맹자』의 행간을 읽고 그 숨을 뜻을 풀어낸 책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맹자의 답을 들어본다.
맹자는 기본적으로 성선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나 착하게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나 惡하게 태어난다고 보는 견해에 비해 어느정도 부드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과 역사에 존재하고 존재 해 왔던 악인들이다.
맹자의 말대로 정녕 모두 착하게 태어났다면 그 많은 惡人은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맹자의 견해는 현실에서 호응이 크지 않았다. 성리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성리학이 등장하여 맹자가 공자와 비슷한 수준의 聖人으로 추앙받고 나서는 맹자의 견해가 정통으로 거듭났기는 하였다.
그러나 맹자 死後 아주 오랜기간 맹자의 견해가 주류적 견해가 아니었다.
어쨌든 맹자는 왜 사람은 누구나 다 착하게 태어난다고 믿었을까.
맹자는 사람이 하늘을 닮았다고 보았다. 다른 존재와 달리 사람은 하늘로부터 선함을 천부적으로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선설의 근거이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에 주목했다. 사람은 마음이라는 것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음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믿음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남을 측은하게 여기는 선함 마음(측은지심)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맹자는 사람에게 태어날 때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배우지 않고서도 할 줄 아는 게 있고 알 줄 아는 게 있다>고 보았다.
맹자는 이를 양능(良能)과 양지(良知)라고 말했다. 양은 선량하다는 뜻만으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인식 한계를 초월하는 절재적 선이라는 뜻에 가깝게 맹자는 양이라는 한자를 썼다.
다시 말해 양의 수식을 받는 지와 능이 하늘의 선함에 닿아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론과 판단으로 맹자는 사람은 착하게 태어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