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우리의 삶의 방식과 질을 결정하는 최종 심급으로서의 정치
오늘날 우리의 삶과 운명(그런 것이 있다면)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다. 누군가의 삶과 운명이 신탁에 의해 예정되거나, 말씀에 의해 결정되었던 시절이 사라지고, 내 운명이 내 주인의 운명에 달려 있던 세계가 무너진 이래로,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되었다. 그 모든 확실성의 지표가 사라진 시대, 서로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꾸려야 하는 세상에서 ‘정치’ 이외의 방식으로 사회를 정당하게 또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더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는 또한 이데올로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것은 정치를 각기 하나의 이데올로기, 하나의 핵심적 신조, 다시 말해 정치를 자유주의, 보수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또는 과학주의로 환원하려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버나드 크릭은 그의 저서 <정치를 옹호함>에서 정치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 ‘찬미’한다. 무언가를 ‘찬미한다’고 일컫는 것은 확실히 평범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상당한 정도의 확신을 필요로 한다. 크릭이 그토록 자신 있게, ‘정치를 찬미한다’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크릭이 정의 내리는 ‘정치’란 명료하다. 그는 정치를 통치나 분배에 관한 것으로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에게 정치란, ‘분열된 사회를 과도한 폭력 없이 통치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고 합의하는 실천적인 행위’이다. 크릭은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 곧 정치의 전부이며, 이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크릭식 정치 정의 하에, 정치는 (조정과 합의를 수반한다면) 무엇도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