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금 왜 ‘붕괴’인가
최근 카카오 사태를 보면서 현대의 시스템적 생활이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 절감했다.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다.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 몇몇 재앙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지구 차원의 위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 문명의 붕괴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우리 문명이 붕괴한다면? 수 세기 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세대. 마야의 종말론이나 천년지복설의 말세론과 거리가 먼 수많은 저자, 연구소, 기관 들이 우리 산업 문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이 암울한 예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는 것이 왜 힘들어졌을까?
붕괴는 세상의 종말이나 묵시록이 아니다. 단순한 위기도 아니고, 몇 달 만에 잊어버리는 일회성 재난도 아니다.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주택, 의복,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서 이것은 세상의 종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과정이다. 물론 종말이 아니라는 점은 빼고 말이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뿐 어떻게 진행될지 알 방법도 없다.
어디까지 이어질까? 누가 영향을 받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들? 부유한 나라? 선진국? 서구 문명? 인류 전체? 아니면 일부 과학자가 예고한 것처럼 대다수 생물 종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들’은 이 모든 범주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석유의 고갈은 산업화한 세계 전체와 관련이 있지만,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살아 있는 종을 위협한다.
인류세는 현재를 특징짓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붙은 이름이다. 우리 인류는 약 1만 2000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농업과 문명을 출현시킨 충적세라는 대단히 안정적인 기후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대다수 인간은 지구 시스템의 거대한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을 방해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변화한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세계적 차원의 냉정한 과학적 선언 그리고 예기치 못한 혼란스러운 사건과 감정으로 정신없는 일상의 삶, 이 둘 사이의 거대한 공백을 채우거나 이 둘을 이어줄 가교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공백을 채우고자 한다. 그리고 인류세와 우리의 용기를 연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붕괴’라는 개념을 선택했다. 이 개념은 다양한 분야, 즉 생물 다양성의 감소 속도뿐만 아니라 재앙과 관련한 감정, 기근의 위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류세의 개념을 생생하고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붕괴라는 개념이다. 하지만 미디어와 지식인 사회에서는 붕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기후 변화, 환경 오염, 생물 다양성, 그리고 우리 주변의 식량 위기와 같은 단어들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최근 기업 경영의 주요 원칙으로 채택되고 있는 ESG 경영도 환경보호를 주요 요소로 포함시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7년, 교토 의정서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2021년 발표된 EU 탄소 감축 입법에 따라 2035년부터 HEV, PHEV 등 내연기관을 장착한 신차 판매가 금지된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공감하거나 우려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환경 오염이나 기후 온난화로 인한 변화로 인해 일상생활의 불편함만 느낀다.
최근 카카오 시스템 마비 사태를 보면서 현대인의 체계적인 삶이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마비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 실감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재앙이었다. 태풍, 홍수, 인구, 주가, 전쟁과 같은 몇몇 재난들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만약 우리가 "글로벌 위기"를 선언하거나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질까? 물론,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회복의 지점을 넘어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문명의 붕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