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누가 죽였는가?’가 아닌 ‘왜?’다”
수십 년간 살인 사건 현장을 헤맨 한 정신과 의사의 강렬한 회고록
살인자의 범행 동기와 심리를 분석하는 영국의 저명한 법정신의학자 리처드 테일러 박사의 첫 저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원제: The Mind of a Murderer)』이 출간됐다. 저자는 26년간 실제 사건 현장에서 100여 건 이상의 강력 범죄를 수사하면서 각계각층의 피해자 및 가해자, 그리고 생존자들과 함께 일해왔다.
이 책은 현장을 누비는 정신과 의사이자 법정에 출석하는 전문가 증인으로 활약하는 동안 저자가 맞닥뜨려야 했던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의 가장 어둑하고 뒤틀린 면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실화가 가지는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의 힘 앞에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시선을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직업인의 소명 의식과 윤리 의식이 모든 잔혹한 사건 기록들 이면에 묻어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겪었던 거의 모든 종류의 살인 사건 사례들을 유형별로 분석했다. 직접 만나 인터뷰한 범죄자들과 심각한 정신 질환자들의 마음속에 어떤 끔찍한 것이 숨어 있는지 파헤치고, 사회가 왜 그토록 많은 노력을 들여 이들을 격리 및 치료해야 하는지(어떻게 또 다른 미래의 죽음을 예방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소견을 들려준다.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왜 기어이 살해하고 마는가?’, ‘정신 질환은 어떻게 살인으로 연결되는가?’, ‘괴물 같은 짓을 당한 이는 또 다른 괴물이 되는가?’, ‘극한의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살인마가 될 수 있는가?’ 등 살인이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둘러싼 숱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다.
부서지고 망가진 살인자들의 내면을 탐구하는 리얼리티 넘치는 후일담일 뿐만 아니라, 평생 그들을 치료하려 애쓴 한 정신과 의사의 고독하고 충혈된 시선과 피로하고 지난한 삶의 기록도 함께 볼 수 있다. 모든 사례가 실화인 탓에 저자는 실존하는 피해자와 생존자, 그리고 이들의 남아 있는 삶을 위해 선량한 동료 시민으로서 윤리적인 관점을 유지하려 몹시도 노력한다.
세상의 공존과 존속을 위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어떤 이들의 괴이한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동안, 그 자신 또한 내내 공포와 불안,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직업인으로서의 길을 오래도록 묵묵히 걸어간다. 영국 범죄심리학의 최전선, 법정신의학자가 목도한 비극적인 인간 내면에 관한 끈덕진 통찰을 독자들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아는 ‘범죄자를 분석하는 직업’은 프로파일러가 유일했다. 범죄심리학을 공부할 때는 항상 프로파일러를 통해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영국의 ‘법정신의학자’의 관점에서 범죄자를 바라보는 책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함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프로파일러는 수사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하였고, 따라서 범인을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범죄자를 면담하는 모습도 프로파일러의 업무가 맞지만, 그건 그들이 하는 업무의 아주 일부분이자 마무리일 뿐 프로파일러 직업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국의 법정신의학자는 범죄자가 잡힌 이후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범죄자에 대한 정신적인 진단과 치료를 위한 노력, 감경 사유에 관련된 질병의 분석 등 법정신의학자가 하는 다양한 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서술하고 있는 9가지 주제에 대해, 저자의 인사이트가 담긴 관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1부: 성적 살인
우리는 ‘성범죄’를 떠올릴 때 굉장히 비이성적이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범죄자를 떠올린다. 가혹 행위를 하다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성범죄자와 살인자는 구분되는 영역이라고 가정하고는 한다. 하지만, 개인의 사이코패스는 다른 범죄자보다 포식자의 폭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양이는 마음에 안 들 때 하악질을 하지만, 정말로 사냥을 해야 한다고 느낄 때는 조용히 먹이를 노려보며 흥분을 제어하려고 한다. 사이코패스 성범죄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신중하게 피해자를 고르고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감정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도 한다. 즉, 성범죄 또한 체계적인 유형과 비체계적인 유형이 존재하며, 책에서 언급했던 ‘앤서니 하디’와 같은 유형은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통제하며 평균 이상을 갖고 피해자에게 말을 걸며 접근한다. 우리나라의 강호순과 비슷한 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