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리얼하면서도 재치 있게 그려낸 한낮의 노동
장강명의 연작소설 『산 자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여러 문예지에서 발표된 10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익숙하게 발생하는 일화를 발췌해 거대하고 흐릿한 적의 실체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10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노동과 경제 문제를 드러내는 소설들은 각각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총 3부로 나누어 수록되었다.
한국 사회의 억압 구조 안에서 가해자나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억압하는 양상을 절묘하게 포착한 《공장 밖에서》, 어느 중견 기업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한 부서의 직원들을 구조 조정하는 이야기를 담은 《대기발령》, 목 좋은 어느 지하철역 근처에 차례로 들어선 빵집들의 무한경쟁기 《현수동 빵집 삼국지》 등의 소설을 통해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등을 소재로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과 그러한 현실을 빚어내는 경제 구조를 동시에 보여 준다.
장강명의 세계(정확히는 장강명이 재현하는 세계)에서는 세 가지의 행위가 삶을 구축한다. 자르기/싸우기/버티기. 싹싹하지 못하며 일머리가 부족한 알바생을 “자르”고(「알바생 자르기」),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기업과(「공장 밖에서」) 작게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싸우”고(「카메라 테스트」), “유명한 뮤지션도 스트리밍으로는 1년에 100만원도 못 버는” 현장에서 “버틴”다(「음악의 가격」). 장류진처럼 장강명 역시 세계를 응시―재현하고 있는데 물론 그 시각은 차이를 가진다. 이를테면 장류진의 소설이 2030의 세계를 (미시적으로) 재현하고 있지만 장강명의 소설은 노동자들의 세계를 조금 더 사회적인 맥락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에서 G20에 들기까지 한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경제성장률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실업률은 계속 올라가는 등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마주칠 일 없던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 문제들 중 ‘N포세대’라고 불리는 부분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대외활동의 신」의 주인공이다. 그의 마지막 대사에는 소설 내내 드러나던 주인공의 심리가 요약되어 있다. 그는 “애초에 뭔가 괜찮은 걸 노려볼 기회가 저한테 있기나 했습니까? 처음부터 컵에 물은 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 컵의 물을 마시느냐, 아니면 그마저도 마시지 못하느냐였습니다.”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