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포스트먼의 주장처럼, 현대 많은 학교들은 교과서를 마치 바이블처럼 여기며 그 속에 담긴 모든 말들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진리라고 불리는 것들을 배우며, 세상에 퍼져 있는 많은 지식에는 이미 정해진 답이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유능한 학자들이 이미 찾아낸 것들이 세상의 진리라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세상의 진리”를 비판적 사고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세상의 진리에 의문을 가져도 별수 없다는 생각은 사회, 학교 그리고 어떠한 힘들에 의해 생겨난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유독 수학과 과학을 싫어했다. 정해진 원리가 있고, 정해진 개념이 있다는 것이 어린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 때도 의문투성이였다. 왜 이 문제에는 이 원리만을 적용해야 하는 걸까? 다르게 풀 수는 없는 걸까? 내 머릿속엔 왜 라는 그 한 글자만이 가득했다.
이해가 도저히 되지 않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처음엔 이유를 설명해주며 나를 이해시키려 했으나, 끝끝내 하는 말들은 모두 “원래 그건 그런 거야.”였다. 왜? 라는 나의 질문을 만족시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수학과 과학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어떻게 발전하는 것이 좋을지 발전의 방향을 예상하는 책이다.
1부에서는 주로 현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다룬다. 그러면서 현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차근차근 따져본다. 현재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면 모두가 납득할 만한 목적이 있어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교육의 목적으로 표상되었던 실용성은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다시 말해서 학문을 연구하는 학교가 단순히 기술을 전하거나 생계를 위한 방법들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대해서도 무조건저긴 찬성에 대해 경계한다. 기술의 발전이 효율성의 면에서 발전을 거듭한 만큼 학생들의 가치관과 인격 형성에도 그러한 도움을 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종합해보아 지금의 학교는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중심이 되어 질서에 순응하는 개인을 만들 뿐이다. 발전들의 역기능이 존재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미래의 가치 중 어떤 것이 중요할지 개인들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