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나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내 외가가 엄청난 시골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사방이 다 논이고 밭인 작은 농촌마을이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소설들에 끌리는 것인지, 원래부터 향토적이고 자연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호미>인 것을 보고 별다른 이유나 큰 기대 없이 덥석 고르게 되었다. 박완서가 쓴 동명의 산문집 <호미>를 재밌게 읽은 기억도 한몫 했다.
<중 략>
나는 외가가 농촌이라 근처에서 보고들은 것은 많았어도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었기에 세세한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손주들에게까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전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농사짓는 일의 단점에 대해서는 꿋꿋하게 침묵을 고수하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방학 때 이삼주 동안 시골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았을 때에는 별 생각 없었던 것들이 이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추를 말리면서 할머니들이 왜 농협 흉을 보는지, 길 옆의 널따란 밭에 보기 좋게 심어놓은 작물들을 왜 다시 엎어버렸는지, 뉴스에서 날씨에 따라 풍흉을 예측하는 것을 보며 풍년이라고 해도 걱정, 흉년이라고 해도 걱정이었는지, 친척 할머니가 왜 힘들게 농사 짓는 일과 병행하여 근처 공장에 일을 다니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