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주인공은 언젠가 그 저택에서 잔심부름을 한 적이 있는 심부름꾼이다. 그곳에서 심부름을 하며 주인공은 AW의 행동과 말씨, 문장을 베끼는 일을 따라하는데...<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비롯해 연장선에 있는 <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 <검은 초원의 한켠> 등 8편을 수록했다.
1. <키운다>는 것
우리는 보통 ‘키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애완 동물’이 전부였다. 아니 꼭 애완동물이 아니더라도, 키운다는 것의 의미는 ‘크다’의 사동사로, 나무를 키우거나 동물을 키운다거나 자녀를 키우는 등 이런식의 말밖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물론 ‘그’도 그 의미를 올바르게 쓰긴 했다. ‘초원을 키운다’고.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초원이 바로, 그의 스무평짜리 아파트 거실 한 가운데에서 크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누구인가, <il>이라고 소개 되고 있는 익명의 그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 중이다. 아내와 별거를 하고 직장에서 근무를 바꾸고 그러다 이혼을 했고 필리핀으로 이민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얼이 빠졌다는 말까지 나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헛소문이었고 그는 스무평 아파트에 버젓이 잘 살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것’을 내가 보살핀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그것’을 키움으로서 ‘의지’를 하거나 ‘집착’을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il>은 있지도 않은 환상 속에서 의지하고 집착하면서 현실에 대한 ‘탈주’를 꿈꾸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