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보통 사람들의 윤리 인식에서도 볼 수 있는 '선의지' 개념에서 출발하여 정언 명령만이 도덕 법칙일 수 있으며, 그러한 도덕 법칙의 체계가 '목적들의 나라'임을 밝힌다. 이를 통해 도덕 법칙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인 자유에 대해 묻고, 정언 명령의 가능 근거를 되짚어 물음으로써 윤리...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사이에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으로 인간의 인식론과 이성에 대해서 나름 정의를 내린 이후 곧바로 인간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고 또 이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정리하리라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칸트의 윤리학은 중요하고 또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이성비판> 못지않게 <실천이성비판>이 유명할 터이다.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실천이상비판>의 서곡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제목 그대로 윤리형이상학에 대하여 칸트 본인의 생각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실천이성비판>보다 분량이 짧다. 아마 칸트는 이 책을 쓰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을 해서 <실천이성비판>을 집필하지 않았을까? <윤리형이상학 정초> 이후 <실천이성비판>이 나온 것을 보면 조금 더 길고 체계적으로 윤리학에 대해서 집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맞을 것 같다.
임마누엘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행동 할 때 너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이 되더라도, 그 것이 가치가 있도록 행동하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라.’ 라고 말이다. 이러한 칸트가 저술한 윤리 아상학 정초. 이것은 윤리학에 관해 저술한 칸트 최초의 저술서로 칸트는 책을 통해 밝힌 그의 목표는 ‘모든 도덕성 최상의 원리’를 찾아내어 이를 확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크게 3개 평범한 윤리적 이성인식, 대중적 윤리 세계지혜, 윤리형이상학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어른들이 강요하는 19금에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학창시절 동안 우리들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무수한 성교육을 통해 성에 대해서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19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따른 폐단으로 19금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올바른 성교육일까?
- 서론
칸트는 형이상학이라는 인식 또는 지식을 학문으로서 서술하려고 한다. 그에 앞서 칸트는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인식의 원천에 대해 말한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형이상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식방식들인 ‘종합판단’과 ‘분석판단’에 대해 고찰을 한다. 칸트는 이 두 가지 판단을 시작으로 해서 ‘어떻게 순수 이성에 의한 인식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이끌어내며 이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변이 없이 쌓아가는 형이상학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는 형이상학적 인식이 순수 수학, 순수 자연과학과 결부 되어있음을 말하며 먼저 어떻게 순수 수학과 순수 자연과학이 가능한지를 분석 한 후, 어떻게 형이상학 일반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려 한다. 최종적으로 다시 돌아와 그는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칸트의 저서들은 그가 명칭하는 용어들에 의해 말들이 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용어들에 대한 확립된 정의를 알아보고 갈 필요가 있다. 확립된 정의가 되어있지 않은 채, 칸트의 글을 읽게되면 우리 눈에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맛보거나 느낄 수도 없는 것의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기에 힘들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칸트가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에 대한 정의를 ‘형이상학 서설’ 그의 저서에서 구하여 그 정의를 확립하고 본론을 더 명확히 이해하여 칸트가 형이상학에서 하고자 하는 것에 이르고자 한다. 이러한 정의를 확립한 후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이 ‘어떻게 순수 이성에 의한 인식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최종적으로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 본론
1. 칸트가 말하는 형이상적인 것과 형이하적인 것. 그리고 그것들의 인식의 선험성과 후험성.
형이하적라는 말은 자연적/물리적/감성적을 뜻 한다. 형이상적이라는 말은 초자연적/초물리적/초감성적을 뜻 한다.
논리학은 철학은 질료적인 것으로 이루어진 보편적 규칙만을 다루는 ‘형식적 철학’이다. 이 안에서 법칙들은 ‘자연의 법칙’과 ‘자유의 법칙’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각각 ‘물리학’과 ‘윤리학’으로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논리학은 타당하고 증명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경험의 대상이 자연이며, 자연에 따라 모든 것이 일어난다고 보는 ‘자연적 세계지혜’와 인간의 의지에 의해 법칙들을 규정하고, 모든 것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야만 하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윤리적 세계지혜’는 각각 경험적인 측면을 기반으로 한다.
<중 략>
칸트의 책이 난해하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고, 또 소문이 자자한(?) 칸트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이 그래도 일종의 행복이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생각했던 것과 같이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한 책이었다. 간혹 문장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볼 때면 칸트가 독자에 대한 배려도 없는 철학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