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05년 제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으로 김훈의 '언니의 폐경'이 선정됐다. 50대 두 자매가 겪는 늙어감, 남편의 떠남, 자식들의 이기심과 배신, 잔잔하지만 분명한 허무감 등을 여동생의 목소리와 시각으로 촘촘하게 교직한 작품이다.언니는 2년 전 비행기 추락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다. '나'는...
우리가 느끼는 일반적인 불안은 ‘재경험’에 관한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사고, 트라우마, 부정적인 경험을 다시 겪는 것에 대한 신경증적인 공포이며 방어기제이다. 그런데 인간 존재가 가지는 아주 원초적인 불안이 있다. 나는 인간에겐 반드시 불안의 원형이 있다고 믿는다. 불안의 반대가 편안이라 했을 때 불안은 그럼 편안의 안티테제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불안은 그 자체로서의 테제이며 편안과 분리된 개별적인 인간 본성으로서 작용한다. 우리가 불안을 편안의 반대급부, 부속적 개념으로 여기는 이유는 편안, 즉 안정되고 정적인 심리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 상태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 분석학에 출생외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아기가 태어날 때 경험한다고 생각되는 심적 손상이나 두려움을 뜻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에로스의 기원’에 나오는 발제는 이데아성이 파괴되어 남녀로 분리된 최초의 인간 모습이 등장한다.
김훈 작가의 ‘언니의 폐경’은 제목만 들어도 불편함이 묻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읽고 나서도 그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소설의 전체적인 틀은 50대 두 자매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짜임이지만 혼자가 되어가는 두 여성이라는 상황이 배어있어 쓸쓸하고 정적인분위기가 느껴졌다. ‘폐경’이라는 소재가 여성인 나에게도 후에 적용 될 상황이고 머지않게는 나의 어머니에게도 적용될 상황이라 그 불편함과 쓸쓸함이 더 증폭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 략>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남성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의 변화와 내면묘사가 세밀하다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섬세함에 감탄했고 그 사실적인 묘사에 더욱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언니의 남편이야기나 주인공의 남편이야기와 같은 갈등상황에서는 세밀한 묘사를 생략했지만 꽈리고추를 넣은 멸치볶음에 대한 이야기나 언니의 계절별 식습관, 주인공 본인의 입덧을 했을 때의 이야기 같은 부분에서 현장을 보는듯한 사실감이 느껴졌다.
여자가 생리가 끝나는 시기를 폐경기, 완경기, 갱년기라고 부른다. 폐경을 그렇게 여러 가지 이름에는 각자의 뜻이 있는 것 같다. 폐경기는 월경이 끝나는 시기, 완경기는 월경이 완성되는 시기, 그리고 갱년기는 인생이 바뀌는 시기로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는 뜻을 가진다. 어떤 단어의 마음가짐으로 월경이 끝나가는 것을 맞이해야 할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갱년기에 먹는 영양제를 티비에서 선전하는 것을 본다.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많아지는 것 등이 갱년기의 증상이다. 기분의 변화가 커지고, 우울해지는 것도 한 증상이다. 이것들로 인해 얼마나 힘들면 저런 보충제까지 나왔나 싶다.
책에서는 갱년기와 월경에 대한 표현이 중간중간 나온다. 책에서 표현되는 폐경기에 대한 표현은 폐경기가 가까워진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폐경을 맞는 여자들은 저녁 무렵에 근거 없는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언니는 불안감으로 수다스러워졌다고 ‘나’는 생각했다. 언니가 창문으로 통해 바깥 풍경을 보는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