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의미를 논하기 전에’.
레포트를 써야하는 책의 제목을 뒤늦게 듣고서 나는 마음 속으로 ‘올레’를 외쳤더랬다. 어리석게도 제목만 보고 이 책은 기독교 관련 서적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역시 OOO 교수님은 달라.’라고 읊조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더랬다. 하지만 이게 웬걸, 책 표지에서부터 ‘기독교신앙의 기본 진리’라는 무시무시한 부제가 떡하니 쓰여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수님은 아실까? 이번 수업이 내가 네 번째로 듣는 기독교개론 수업이라는 것을. 하지만 난 졸업을 위해 이번 학기에는 반드시 이 수업을 이수하야만 했더랬다. 이 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억지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제목에 서술된 ‘인생의 의미’보다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진리 즉, 혹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본다.
믿음의 경계에 있다면
기독교에 대한 불신이나 부정적 인식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번화가를 조금만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팻말은 공해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어릴 적부터 교회와 친숙하지 않았던 성인이라면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 일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만연하게 퍼진 부정적 이미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궁금하거나, 기본 진리를 알고 신앙의 첫 걸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무의미를 논하기 전에’는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것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나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니거나 교회와 친숙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믿고 따른다.
기독교개론 수업을 들으며 기독교의 내용을 배우노라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약간의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여대에 입학하고 나서 매주 채플에 참석하고, 교양필수과목인 기독교개론 수업을 듣는다는 그 자체에도 거부감이 있다. 아니, 있었던 것 같다. 허나, 입학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많은 생각이 바뀌었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나는 그를 믿는다.’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존재 하실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기독교개론수업을 들으며, 또 이번학기 과제인 ‘인생의 무의미를 논하기 전에’라는 책을 읽으며 더 확고해졌다는 사실은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놀랄만한 일이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진리를 소개하기 위하여 쓰여진 책이다. 하나님과 그에 대한 믿음의 내용이 담겨있는 책. ‘그래, 속는셈치고 한 번 읽어보자.’ 고 생각하며 페이지의 첫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