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다시 한번, 황정은이 황정은을 넘어서다
나를 이루는 세계에 대한 황정은의 질문2019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선정되고 연작 『디디의 우산』으로 만해문학상 5ㆍ18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독보적인 개성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황정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年年歲歲』. 이 책은...
1. 파묘(破墓)
일흔이 넘은 이순일이 자신이 죽으면 더는 돌볼 사람이 없는,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외조부 묘를 없애고 마지막 제사를 드리기 위해 둘째 딸 한세진과 동행하는 이야기다. 한세진은 그 묘가 엄마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친정이기에 어려서부터 동행하지만 남편과 큰딸, 막내는 그러지 않는다. 딱 한 번 같이 간 남편이 절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 있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다시는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권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이순일이 신은 양쪽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흙바닥에 박혀버리자 밑창을 남의 논바닥에 남겨둔 채 그곳을 떠난다.
2. 하고 싶은 말
이순일의 장녀 한영진의 이야기다. 한영진은 시댁 재산인 4층짜리 건물 한 개 층에서 살다가 친정부모님께 아이 양육과 살림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부
1. 한영진은 무엇이든 능숙하게 팔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엔 침구가 한영진의 상품이었다. 이불과 베개. 침구 매장이 십여개 모인 백화점 9층에서 한영진이 담당하는 매장의 매출이 가장 높았다. 한영진은 싼 것을 팔 때보다 비싼 것을 팔 때 더 유능했다. 다른 매장에서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엄마의 선(善)으로 부추기며 침구 한 세트를 팔 때, 한영진은 엄마들 본인의 이불과 베개를 하나씩 더 얹어 팔곤 했다. 한영진의 실적을 부러워하며 판매 패턴을 눈여겨본 근처 매장 직원들이 한영진을 흉내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는 같지 않았다. 엄마들이 좋은 거 써야 해. 똑같은 말을 해도 한영진은 팔았고 그들은 팔지 못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한영진 자신도 실은 잘 알 수가 없었는데, 대체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영진은 내가 엄마 마음을 잘 아는 딸이었다고 대답했다. 장녀거든 내가. 없는 집 기둥이라서, 엄마랑 각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