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권헌익이 제시하는 새로운 냉전의 이해!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 『또 하나의 냉전』. 냉전이 서구에서는 오랜 평화이자 상상의 전쟁이었다면, 한국과 베트남을 동아시아에서는 내 가족과 이웃의 목숨이 걸린 폭력적인 전쟁이었다. 행동이 아닌 사상을 처벌하는 사회, ‘저쪽...
‘냉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직접적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ㆍ외교ㆍ정보 따위를 수단으로 하는 국제적 대립. ‘ 즉, 냉전이라는 것은 비폭력적 갈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오랜 기간의 식민지 지배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계 속에서 한국 전쟁을 거친 뒤, 현재의 분단까지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민족들은 냉전이라는 개념이 비폭력적 갈등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같은 현상은 베트남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본 책, 또 하나의 냉전 : 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는 이러한 냉전의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번째는 냉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한국어판 서문 오늘날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가
우리 해방공간의 역사는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다. 이 공간은 우리의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사의 것이었다. 초기 냉전 시기는 한반도의 질서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단의 질서로 만들어진 시대인 동시에 20세기 후반의 세계질서가 우리가 아는 양극의 질서로 만들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우리는 민족해방이라는 찬란한 경험을 했다. 식민지배의 고통과 치욕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는 희망과 힘을 지닐 수 있었던 눈부신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또한 초기 냉전의 정치적 양극화가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면서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던 사람들의 미래가 몹시 불안하던 때였다.
탈식민 과정이 냉전의 권력과 만나는 역사적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그리고 이 탈식민적 냉전이 한반도에서는 극히 혼란스럽고 폭력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도 익숙하다. 한반도에서 민족해방의 역사는 곧 민족분단의 역사였으며 이 두 역사의 교차점은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파괴의 역사를 수반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파괴를 온몸으로 겪엇던 부들이 아직 우리의 이웃에 살고 있고 이들의 역사는 우리의 마을과 가족 안에 있다. 나아가서 우리만이 탈식민의 세계냉전을 격하게 폭력적으로 경험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후에 아프리카의 많은 신생국가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공동체들이 비슷한 혼란의 겪었다.
‘냉전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비폭력적 갈등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답할 것이다. 실제로 백과사전을 찾아봐도 비슷한 설명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면 이 말에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조선은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미국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 사회주의 세력의 충돌, 즉 냉전을 경험했다. 최종적으로 한반도의 냉전은 한국 전쟁 및 분단까지 이어졌다. 한국 전쟁은 분명 냉전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냉전을 ‘비폭력적 갈등’으로 정의하는 순간 모순이 발생한다. 이런 모순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도 발생한다. 냉전의 모순을 한반도의 특수한 사례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 하나의 냉전 : 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에서 해답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