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가? (책에서는 하나님의 예술적 수완이라고 표현한다.) 자연을 통한 영광과 인간을 통한 영광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니, 하나님께서 어떤 면에서 차이를 두신 걸까? 사실 근원적 차이에 대해 우리가 추측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만 할 수 있다고 본다. 그 결과에 따라 창조된 이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 아닐까.
나에게 요구하시는 어려운 일이 있었는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부자지간이다. 사람 사이의 부자관계를 보더라도 어려운 일을 혹은 위험한 일을 요구하는 부모는 없다. 이런 질문이 나온 이유는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 23:10” 는 말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또 있지만 이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편협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어려움을 나에게 요구하신다고 말하기보다 나의 선택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아들의 앞길을 인도하시기 위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로 인도하시려고 최선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닐까.
심하게 다툰 사람이 있다. 다툰다는 표현은 좀 더 어린 학생 시절에 쓰는 단어인 것 같다. 지금은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확대되어 오해가 되고 그것이 발전해 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고 말하고 싶다. 초반의 서운함은 작은 대화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골이 깊어진 서운함은 오해라는 꽃을 피게 되고 불신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나의 경우 오해라는 꽃이 피었을 때는 당사자와 대화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 하나 오해의 실마리가 풀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