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제8권『웃음소리』는 15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 작품집이다. 관념 소설, 사실주의 소설, 패러디 소설 등 최인훈 소설의 여러 갈래들이 교차한다. 한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의 집이 정신병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 환멸을 느끼는 <우상의 집>의 주인공, 내내 귀에 들렸던 여자의 웃음소리가 자신의...
1. ‘속에 사막을 품고 있는 여자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남의 무정함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
그녀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고통은 외로움이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고독감.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에게 마저 거부당하자 죽음을 선택하는 그녀는 그만큼 사람에 굶주려 있었고, 그 허기에 지칠 대로 지쳤다는 소리다. 나는 그녀가 죽음을 담담하게 원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한 서술 중간 중간 에서도 위의 문장처럼 그녀가 얼마나 사람의 호의-순수한 호의-에 굶주려 있는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자신만 생각하고 남의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중요치 않게 여기는 그 행동에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난 그녀가 경험한 모든 환상성 역시 그 뚱뚱한 남자가 그녀에게 노골적으로 던진 시선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 역시 그녀와 자신을 버린 남자의 상황에 몰두해 주변의 모든 풍경-심지어 시체들 마저도-을 자신의 경험-그녀의 사랑이야기-에 투사시킨다. 그렇기에 난 그녀가 그 시체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욕망을 직시했기에 죽음을 포기했다는 의견도 수긍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란 으레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자신에 관련된 것만 본다는 것 새삼스레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상대방도 스스로만 생각하고, 나도 스스로만 생각한다면 서로 미워할 이유도, 굳이 내가 죽어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2. 그녀에게 죽음은 목적지였나, 수단이었나.
소설의 처음부터 그녀는 자살을 결심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자살할 장소, 시간, 방법을 정해 놓기 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핏 본 예수상에서 환상을 볼 정도로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그녀에게 자살이라는 무게는 타인의 사소한(?) 구원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연인의 다정한 모습이 실제는 시체였다는 것을 알고 자살을 포기한다.
이 소설은 남자에게 버림받고 자살여행을 떠나는 여자의 환상과 내면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절망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본 것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이다. 그녀는 충격으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녀가 보는 것은 현실인가 꿈인가 작가는 끊임없이 독자를 괴롭힌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짧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상징적인 의미의 매개체들이 많이 나와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보아야 하는지 지금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그냥 글을 흘겨 읽고 있는지 나를 환상이 아닌 환각상태로 이끌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사랑의 상처를 받았다. 사랑이 떠난 자리는 쓸쓸함과 허무함. 그리고 고독감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사랑의 상처는 누구에게 칼로 베인 듯 시리고 아프다. 이것을 견디지 못한 그는 죽기로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