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장편소설 『유원』.십여 년 전 비극적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여덟 살 주인공 ‘유원’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날 화재 사건에서 자신을 살리고... 말로 꺼내 놓기 어려운 모순투성이의 마음을 펼쳐 보이는 ‘유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각자의 자리에서 아픔을 딛고 성장해 나가는 십 대, 그 시기를...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살아간다. 하물며 조별 과제에서도 자로 재듯 똑같이 역할을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희생하는 사람이 생긴다. 잘 모르는 채로 혹은 잊은 채로 지나치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희생, 친구의 희생 등 켜켜이 쌓인 희생 덕분에 하루를 보낸다.
여기 끔찍한 화마에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두 사람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그 결과 내가 아는 어느 누구 보다 가장 큰 죄책감으로 사는 원이가 있다.
원이는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제목마저 그녀의 이름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원이의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주변인마저 언니의 것이다.
딸을 잃은 부모님, 언니의 단짝 신애, 11층에서 원이를 받고 불구의 다리가 된 아저씨. 이들은 언니의 생일에 찾아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원이도 모르는 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것이 언니로 둘러 싸여 있는 원이의 일상은 관심도 없는 대회를 나가게 한다. 언니가 그랬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빚쟁이가 되면 사는게 많이 힘들 겁니다. 나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된다면, 갚아 나가야만 하는 중압감에 하루하루를 짓눌려 지내겠지요. 돈을 빚졌다고 한다면, 하 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조금씩 갚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목 숨의 빚을 졌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 목숨을 살려 준 고마운 은인에게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입니다. 만약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여기 존재 하지 않을 테니까. 평생을 기쁜 마 음으로 갚아 나가면 될 것입니다. 이 책 속의 주인공 ‘유 원’은 목숨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고등 학생입니다. 두명의 은인으로부터 삶을 선물 받은 유원은 어쩐 일인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 습니다.
유원은 12년 전, 위층 할아버지가 피우던 담배꽁초의 불이 아래층에 옮겨 붙으며 시작된 화재에서 살아남았다. 그 일로 유원은 사람들에게 은정동 화재 사건 생존자, 11층 이불아기로 기억된다. 유원의 언니인 예정은 동생을 살리기 위해 젖은 이불에 말아 11층에서 던졌다. 11층에서 던져진 아이를 받아낸 아저씨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생명을 구한 영웅이 되었고 동생을 살린 후 숭고하게 죽음을 맞이한 언니 또한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기억되었다.
언니가 죽은 지 12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언니를 기억한다. 유치부 보조 교사를 함께 했던 오빠부터, 초등부 시절 담당 선생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친구인 신아는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언니의 생일 때마다 집을 찾아와 추도한다. 유원은 가족 말고도 언니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일이 조금은 의아하고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