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권순찬이라는 인물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주민들은 권순찬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힘을 합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돋보였던 권순찬-주민들 사이의 관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악화한다. 모든 문제의 주범이었던 ‘사채업자 아들’의 존재감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들이 겪는 불편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근본적인 갈등 조장의 주체를 잊게 되었고 결국 단결되었던 공동체에 균열이 생겨버리는 암담한 상황이 전개된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임팩트가 있었다. 작품이 수록된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실린 단편들 모두 주변에서 한 번쯤은 볼 수 있을 법한 이름과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센스가 드러나는 부분이었고, 속도감 있고 쉽게 읽히는 작품의 분위기 또한 잘 어울렸다.<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의 화자는 작가 겸 교수로, 이 대목에서 벌써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현실감이 들었다.
화자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인물이다. 무기력증으로 글을 쓰지 못해 매일 원고지를 쳐다만 보다 술을 마시고 잠들며, 본업보다 자질구레한 학교 일에 열중한다.
선의란 무엇인가
인간은 강자에게 강하지 못하고 약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거기서 우월감을 느끼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속 작은 구석에는 선의라는 작은 먼지 같은 양심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착한 존재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인간의 선의는 어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의 “나”는 무력증에 빠진 글쓰는 사람이자 지방 대학의 교수이다. 마음 속으로는 화를
자주 내면서도 남들에게는 자신이 “화가 난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꿎은
가족에게 화를 내지 말자고 계속 혼잣말” 하는 “나”는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권순찬 씨는 사채꾼 김석만으로부터 700만원을 돌려받고자 일인피켓시위를 시작한다. 지은지 25년이 넘은 이 낡은 아파트의 착한 주민들은 그의 시위에 불평하고 욕하기보다 먹을걸 가져다주기도하고, 청소일을 소개 시켜주기도하며 남자를 돕는다. 그리고 심지어 주민들은 돈 700만원을 모아 권순찬 씨에게 전달하기까지한다.
<중 략>
답답한 사람들
권순찬 씨가 아파트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안타까웠기에 도와줬다. 착한 사람들이었기에 도와줬다. 그래서 도와줬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권순찬 씨에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채꾼은 언제 올지도 모른다.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그의 어머니는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웃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고, 도움을 거절한 권순찬 씨는 꿋꿋이 시위를 이어간다. 아파트의 ‘착한주민들’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를 결국 쫓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