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유년의 기억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성장소설!<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작가 이도우가 선보이는 따스하면서도 쓸쓸한 성장소설 『잠옷을 입으렴』.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음미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여자. 이 소설은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주인공 : 고둘녕, 조수안
‘꿈속에서 조용히 울었다. 슬픈 꿈이었다. … 나는 모암마을 옛집 마당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p9
둘녕이 꿈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른여덟살, 미혼, 외할머니의 재봉틀로 옷수선집을 하는 여자. 다리를 조금 저는 혼자사는 여자.
모암마을은 둘녕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11살, 엄마가 사라지고 아빠손에 끌려 모암마을 외갓집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은이 이모의 딸 수안을 처음 만난다.
‘수안과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대로 따뜻했습니다. 외할머니의 부엌엔 맛있는 음식이 있었고, 모두가 잠든 뒤에도 처마에 매달린 백열등은 꺼지지 않아 우리 방은 밤새 달빛보다 더 노란 빛으로 차 있었습니다. 나는 새삼 수안과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들어줄 사람이 삼촌 말고도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p40
말을 안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만 있을 때 그리움은 자꾸자꾸 깊이를 더해간다. 잊고 싶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면 차라리 겉으로 드러내 놓고 펼쳐 보이는 것이 좋겠다. 그리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울때마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둘녕은 수안과 함께했던 모든 것들에서 떠나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수안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 그리움은 먼 기억속의 꼬맹이 산하를 만나서 밖으로 꺼내진다. 이제 둘녕에게는 그리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삼촌말고 또 한사람 생겼다.
‘나무 그림자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아라. 다 괜찮아졌으니까 나무가 보내는 위로가 내 어린 영혼에 진동해왔다. 세월이 지났어도 수안이 만들어준 생명선은 손목까지 긴 흉터로 남아 이어졌다. 지금도 볼에 덴 듯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마치 어젯밤 일인 것처럼’ p62
엉터리 점성가의 말을 무시한다고 하면서도 수안은 둘녕의 손바닥에 생명선을 길게 늘려 준다. 그것이 아플 것임을 알면서도 둘녕은 수안이 하는 일에 한 번도 토를 달지 않는다. 마치 그래야 되는 숙명인것처럼.
‘둘녕’이라는 주인공 이름을 들었을 때, 생뚱맞게 어릴 적 읽었던 ‘몽실 언니’가 생각났다. 이 책의 이야기 배경이 몽실 언니가 살았던 시대만큼 옛날은 아니지만 그 이름에서 왠지 시골에 사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 여자 아이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을수록 내 예상이 맞아떨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둘녕’이는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도 없다. 그야말로 홀홀 단신. 하지만 둘녕이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외할머니와 둘녕이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착한 이모와 이모부,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막내 외삼촌, 쌍둥이처럼 의지하는 동갑내기 사촌과 귀여운 막내 사촌동생까지 다복하다. 하지만 아무리 친척들이 잘해준들 직계가족만큼은 아닌 법.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장례식장에서 밤을 샐 때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 영정사진을 보는데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지금 이런 공간에서조차 감기 걸릴까봐 덮을 것을 더 챙겨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