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를 쓰기 위해 소설을 쓰고, 시로 가기위해 독일에서 낯선 종교와 정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며 한사람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시인 허수경. 그녀가 두 번째 시집 발표이후 8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만이 간절한 세월이었단다. 뿌리를 뽑고 날아가는...
2. 시인 허수경.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시인을 꼽으라면 약간 망설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성 시인을 꼽으라면 단연 허수경이다. 허수경이 좋은 이유는 많지만, 몇 가지 꼽으라면 세상을 깊게 본다는 것과 그 표현방식이 진하다는 것과 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에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마디 말에 한 단어의 의미도 전하지 못한다. 한 문장을 말해도 그 문장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한다. 하지만 허수경은 한 마디 말에서 서너 마디의 의미나 그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내가 느끼기에 그 정도일 뿐, 더 깊은 눈을 가진 독자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를 건질 것이다.
어느 경지에 오른 인간은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고 한다. 무술의 경지에 오른 무인은 근육이 불룩하지도 않고 눈빛이 매섭지도 않고 목소리에 날이 서있지 않다. 오히려 평범하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도 쉬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순간이 오면 자신의 내공을 드러낸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가 무술의 경지에 오른 대가임을 깨닫는다.
<중 략>
3.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앞 날개에 쓴 작가의 글.
‘조숙한 청승’ 허수경은 첫 시집을 내고 이런 평을 받았다. 첫 시집은 시인의 나이를 생각할 때 상당히 조숙했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안목을 갖는다. 세상을 더 느끼고 더 보고 더 생각하기 때문에 스쳐지나가듯 세상을 지나갈 뿐인 여타의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을 갖는다. 허수경도 그랬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쓰고 시를 만들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두 번째 시집에선 첫 번 째보다 청승이 덜 했다.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는 좀 더 갈고 닦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