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상상력과 여성성의 시어들로 빚어져 희망의 언어가 담긴 허수경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토속적인 문체로 사랑과 기다림, 그리움을 노래한 `진주 저물 녘`을 비롯하여 `폐병쟁이 든 내 사내` 등 허수경의 시를 총 4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감성적이고 세련된 언어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8년에 이 시집은 세상에 나왔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스무여 해를 살아온 한 여성이 이 시집을 썼다. 이 시집 안에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 무수한 약자들의 인생이 녹아있다. 시인은 어떤 삶을 목격했기에 '방년'이라는 꽃다운 젊은 나이에 이러한 깊은 눈을 얻었을까.
나는 허수경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녀의 나이를 한 번씩 확인한다. 도대체 이런 시어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대체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이렇게 세상을 읽을 수 있을까. 번번이 이런 질문에 맞딱뜨리게 된다. 그만큼 그녀의 시는 짙고 풍부하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허수경의 시를 한번쯤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같은 질문을 한번씩 던졌을지 모른다.
"진실은 시와 같다. 많은 사람들은 시를 혐오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최근에 본 영화에서 극 중 등장인물이기도 한 '자레드 베넷'은 이런 말을 했다. 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약간 의아한 발언이었지만, 한편으로 그가 말 하는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시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시는 과연 그런 것일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레드 베넷의 말을 의식하고 질문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에 손을 들었다. 시는 그렇지 않다. 시를 혐오한다면 그건 시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에서 도입부에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한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자레드 베넷에게 또 시를 오해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우리가 시를 혐오한다면 시의 길에서 곤경에 빠지는 까닭은 시를 몰라서는 아니다. 시를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재작년에 작고한 한국의 대표 시인 허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