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희망에 찼던 18세기 광인의 수용소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말 정신과 개원의의 진료실에서 마무리된다. 푸코의 대감금 주장에 대한 반박, 초기 수용소의 끔찍한 상황, 푸로이트에 대한 혹평 등 우리가 전혀 몰랐거나 일부분만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반전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나아가 최근 거대...
정신병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18세기 말 이전까지는 이에 관련된 전문분야가 존재하지 않았다. 광인 취급을 받던 사람들은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주로 가족들에 의해 돌봄을 받았다. 사실 수용소는 중세시대부터 존재하였는데 정신병자의 치료 목적보다는 감금, 관리하는 기능이 주였다. 또한 정신병자보다는 거지, 노인, 신체 질환자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처음 정신병자들을 따로 수용하는 격리 병동은 1729년 보스턴에 설립되었다.
18세기 말부터 치료법을 통한 정신 질병의 완치에 대한 인식이 의료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수용소를 통해 환자를 낫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개혁의 열기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수용소가 여러 군데서 시작되었다. 몇몇 수용소 의사들이 책을 썼고 그 중 최초로 수용소의 치료적 효능에 대해 주장한 정신과 의사로 런던에 개원한 의사 윌리엄 바티가 있다. 바티는 일종의 격리 치료법을 권했고 정신질환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피렌체, 프랑스 등에서 수용소를 심리적 치료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근대 정신의학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는 필립 피넬은 치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사회로 복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았고 이러한 환자들에게 의사는 끈기 있게 헌신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817년부터 에스퀴롤이라는 의사는 의과 대학생에게 정신과 강의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용소를 개혁하고자 했고 환자와 의사는 정신과라는 환경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주장했고 치료공동체로써 수용소를 인식했다. 피넬과 에스퀴롤부터 전파된 개혁의 사상은 미국까지 퍼져 나갔다.
중앙유럽에서는 개혁운동의 주요 권위자였던 레일은 치유 불가능한 환자를 위한 수용소에 관심을 쏟고 치료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